수면제 30알 탄 양주로 살해 혐의
재심 “피해자 위장서 약물 안 나와
증거물 위법… 허위 자백 가능성”
김씨 남동생 “누나에게 위로 되길”
사건 발생 2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신혜 씨가 6일 오후 전남 장흥군 용산면 장흥교도소에서 석방된 뒤 발언하고 있다. 김씨는 2000년 3월 아버지(당시 52세)에게 수면제를 탄 양주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았으나, 2015년 재심 개시가 결정돼 이날 무죄를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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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김신혜(47)씨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구속된 지 24년 만이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재판장 박현수)는 6일 존속살해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씨의 재심 재판에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복역 중인 무기수가 재심 재판을 거쳐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김씨의 일기장 등 증거물이 영장 없이 압수됐고,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김씨의 자백도 허위 자백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씨는 2000년 3월 전남 완도 집에서 아버지 A(당시 52세)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에게 수면제 30알을 탄 양주를 먹여 살해한 뒤 시신을 근처 버스 정류장에 버린 혐의를 받았다. 2001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당시 경찰은 김씨의 고모부로부터 “김씨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신고를 받고 김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고 김씨의 자백도 받았다.
그러나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김씨는 법정에서 “고모부가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고 해 남동생 대신 감옥에 가려고 거짓 자백을 했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15년 광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해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면서 김씨는 다시 법정에 섰다.
수사기관은 김씨가 자신과 자신의 여동생이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은 것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김씨 공소장에는 보험설계사였던 김씨가 아버지 앞으로 보험을 8개 가입한 뒤 8억원 상당의 보험금을 타내려 했다는 범행 동기도 담겨 있다.
이날 박현수 재판장은 “사건 당시 김씨 남동생이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었고, ‘가벼운 형을 받을 것’이란 친척의 말을 듣고 김씨가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자백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김씨가 양주에 탔다는 수면제 30알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박 재판장은 “부검 당시 피해자의 위장에서는 가루든 알약이든 많은 약을 복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사건 직전 피해자 이름으로 보험을 가입한 정황은 있으나 보험설계사 자격이 있는 피고가 가입 직후 사건으로 보험금을 타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고 했다.
김씨에 대한 무죄 선고 직후 김씨의 남동생 B씨는 취재진 앞에 서서 울먹이며 “이 판결로 누나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란다.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 재심 사건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김씨는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24년간 노역을 거부하고 독방에서 홀로 투쟁해왔다”며 “김씨가 출소한 뒤 몸과 마음에 난 상처가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해남=진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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