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에 대한 체포 시도가 대통령경호처와의 대치 끝에 무산됐다. 경호처가 친위대로 전락해 국가기관의 정당한 법 집행까지 가로막은 것이다. 대통령 직속의 경호기관이 언제든 권력자의 수족처럼 운영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됐다.
애초 제2공화국까지 대통령 경호는 경찰의 업무였다. 경무대(현 청와대)의 관할서인 창덕궁경찰서가 대통령 경호·경비 업무까지 맡았다가 경무대경찰서가 창설되면서 국가원수에 대한 집중적 경호가 이뤄졌다. 현재의 경호처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산물이다. 5·16 쿠데타 뒤 설치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경호대가 박 전 대통령 취임 뒤 ‘대통령경호실’로 탈바꿈했다. 이후 정권에 따라 경호처·경호실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대통령이 수장 임명의 전권을 가진 최근접 조직이라는 기본 뼈대는 변하지 않았다.
최고 권력자의 위세를 업은 경호기관의 권력남용 우려는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권력자의 ‘선의’에 기댈 뿐 견제 장치는 전무하다. 언제든 권력자의 사적·정치적 문제에 개입될 수 있는 것이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경호수장인 차지철·장세동은 대통령을 뒷배 삼아 정권의 2인자로 행세할 수 있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김용현의 경호처’는 ‘차지철의 경호실’과 유사한 행태를 보였다. 2022년 11월 입법예고된 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안은 경호처가 경호 업무를 수행하는 군·경찰을 지휘 감독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유신정권과 판박이다. 논란 끝에 ‘지휘·감독’ 대신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한다는 문구로 변경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023년 10월엔 경호처장에게 신원조사 권한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법령 개정을 시도했다가 무산됐다. 정부 제출 2025년도 경호처 예산안(1391억원)이 2022년도(970억원)보다 43.4% 증가(나라살림연구소)하는 등 비대화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내란죄 피의자를 육탄 방어한 대통령경호처의 초법적 행태는 ‘대통령의 사병’으로 변질된 경호처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주요국은 경호기관에 대한 이중·삼중의 통제장치를 두고 있다. 미국은 국토안보부 소속 비밀경찰국이, 의원내각제인 영국과 일본·캐나다 등에선 경찰청 산하 조직이 경호를 담당한다. 우리도 민주주의 수준에 걸맞은 경호기관을 논의할 때가 됐다.
최혜정 논설위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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