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문헌에 등장하는 딸기…식용보단 약용
우리나라에는 20세기 초 일본 통해 들어와
설향 등 국산 품종 개발되며 '딸기 전성시대'
편집자주[맛잘알 X파일]은 먹거리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칩니다.
옛날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병든 노모와 효자가 살고 있었어요. 어느 겨울 노모는 죽기 전 딸기가 먹고 싶다고 했지요. 아들은 딸기를 찾아 눈 덮인 산을 쓰러지기 전까지 헤맸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딸기는 없었죠. 다행히 그 광경을 보고 효성에 감복한 산신령이 딸기를 구해주었고, 노모는 딸기를 먹고 병이 씻은 듯 나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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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딸기는 겨울에 절대 구할 수 없는 과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딸기가 겨울 과일의 왕이 됐습니다. 달콤한 향, 매혹적인 붉은빛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딸기.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과즙미가 퍼집니다. 딸기의 인기는 최근 몇 년 새 절정에 이른 것 같습니다. 연중 과일인 사과나 과거 대표적인 겨울 과일이던 감귤도 밀어내고 3년째 대형마트 3사의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다네요. 생딸기뿐 아니라 겨울철만 되면 딸기 케이크, 딸기 주스, 딸기 찹쌀떡 등 카페들도 신메뉴를 쏟아내고 있지요.
여러분은 딸기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딸기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습니다. 고대 로마 문헌에도 등장하죠. 딸기는 중세 유럽까지 식용보다는 약용으로 쓰일 만큼 만병통치약으로 통했습니다. 사과의 10배, 레몬의 2배에 달하는 비타민C가 천연 피로해소제 역할을 했지요. 또 혈액순환에 좋은 칼륨, 철분을 듬뿍 함유해 영양 만점이랍니다. 1657년 태어나 백수를 누린 작가 베르나르 퐁트넬은 자신의 장수 비결로 딸기를 꼽을 정도였죠.
딸기가 지금의 모습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때는 신대륙 발견 이후 북아메리카의 버지니아 종과 남아메리카의 칠레종이 유럽으로 건너와 교배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딸기 인기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품종이 개발됐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이죠.
금실 딸기. 곡성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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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의 역사는 이토록 긴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딸기를 먹기 시작한 건 것은 수십 년에 불과합니다. 처음 딸기가 들어온 때는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서 전파됐다고 알려졌어요. 재배는 1960년대 수원 근교가 시초였고요. 1980년대까지는 우리나라의 산딸기와 구분하기 위해 양딸기라 불렸답니다. 초창기에는 노지 재배가 주를 이뤘어요. 딸기를 겨울에 구할 수 없는 이유였죠.
하지만 이후 1980년대 백색혁명이라 불리는 비닐하우스 보급 이후 시설재배로 자리 잡으면서 수확시기가 점점 앞당겨졌답니다. 아키히메, 레드펄 등 일본 품종이 주류를 이루던 10여년 전만 해도 딸기는 봄을 대표하는 과일이었는데요. 2005년 겨울철 하우스용으로 개발된 '설향'과 함께 우수한 우리 품종이 나온 이후 겨울 설 차례상에도 오를 수 있게 됐답니다. 겨울 딸기는 긴 성숙 기간을 거치며 봄 딸기보다 당분 함량이 높고 품질도 뛰어나다고 해요. 농가의 95%가 일본 품종을 능가한 우리 품종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딸기는 단번에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답니다. 설향과 함께 매향, 죽향, 금실, 킹스베리 등 5개 품종이 대표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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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딸기 100g의 소매 가격은 2533원입니다. 2만5000원을 치러야 딸기 1kg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딸기 가격은 한 달 전보단 12.5% 낮아졌지만, 여전히 1년 전과 비교해 10%가 높고, 평년과 비교하면 25% 비쌉니다.
매년 딸기값이 고공행진하는 배경은 뭘까요. 일단 이상기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15년째 딸기 농사를 짓던 한 농부는 "지난해가 딸기 키우기에 가장 최악이었던 해"라고 꼽더군요.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로 딸기 묘목이 침수된 데다 이후에는 사상 최악의 폭염 탓에 생육이 부진했거든요. 그 결과 초기 출하 물량이 적어지면서 이번 딸기 가격이 폭등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 때문에 딸기가 들어가는 모든 제품의 가격도 덩달아 올랐답니다. 딸기 뷔페가 대표적인데요. 서울 시내 주요 특급호텔이 공개한 딸기 뷔페 입장권은 성인 1인 기준 10만원을 훌쩍 넘습니다. 롯데호텔 서울의 '머스트 비 스트로베리' 디저트 뷔페는 13만5000원인데요. 지난해 초 11만5000원과 비교하면 17.4%나 올랐습니다. 서울 잠실 롯데호텔월드의 딸기 뷔페는 1인 기준 10만8000원. 역시 지난해 9만8000원에서 10% 넘게 뛰었네요.
한국 딸기 맛이 관광객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에는 수출도 활황인데요. 2023년 수출액만 7110만 달러(약 1043억원)를 넘겼다고 합니다. 홍콩,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26개국에 수출 중인데 특히 싱가포르에선 한국산이 신선 딸기 시장의 점유율을 43%나 차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 혹여나 냉동 김밥 수출에 김값이 뛴 것처럼 딸기 값이 더 오르지는 않을까 걱정되네요. 물론 농가에는 힘이 되겠지만요. 그럼에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딸기를 집 앞 슈퍼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건 정말 축복인 것 같습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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