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시작한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도로에서 경찰과 경호처 직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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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히 왕처럼 행세하고 있다.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에도 끝내 불응했다. 공수처의 적법한 공무집행인데도 안하무인이었다. 그는 법 위에 존재하는 왕처럼 행동했다. 그의 충실한 ‘호위무사’ 박종준 경호처장과 경호처 직원 및 병사들을 마치 사병처럼 부려먹었다. 아직까지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런다고 사태가 전혀 달라지지 않을 텐데도 막무가내다.
어쩌면 그는 분할 수도 있겠다. ‘그날 밤 조금만 더 일찍 계엄군을 국회의사당에 투입했더라면. 1시간, 아니 30분만이라도 더 일찍….’ 그런 상상을 하며 그는 분루를 삼키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계엄 선포되기 전에 병력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반대해서.’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그랬더라면 지금쯤 그는 진짜 왕좌에 올라앉아 세상을 호령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손바닥에 그냥 ‘왕’자를 새긴 게 아니었다. 정말로 왕처럼 되고 싶었던 게 속속 드러나고 있다. 충암파 최측근들을 만나 여러 차례 ‘비상대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것만 거머쥐면 골치 아픈 야당 상대하지 않고 자신과 아내를 향한 특검도 받지 않으면서 입법·사법·행정 3부 위에 군림해 마음껏 세상을 다스릴 수 있을 텐데…. 반국가 종북 세력을 싹 다 쓸어버리고 진짜 자유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을 텐데…. 군인들인 박정희와 전두환도 그렇게 했는데 엘리트 검사 출신인 내가 왜 못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게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과 그 수하들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벌였던 일련의 행태들은 군사쿠데타 원조인 박정희와 박정희가 키웠던 전두환의 비상계엄 조치와 비슷한 대목이 많았다. 마치 그대로 베끼기라도 한 것처럼. 박정희의 1972년 10·17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전두환의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가 바로 그것들이다. 두 독재자는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해 손에 넣은 비상대권을 가지고 집권 연장과 권력 찬탈을 도모했고 성공했다. 저항하는 야당과 재야인사, 학생들은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경호실, 경찰 등 권력기관들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제압했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과 그 수하들은 상당기간 앞선 두 독재자의 비상계엄 조치들을 연구하면서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는 1971년 4월 대선에서 광범위한 관권·금권 부정선거를 자행했음에도 김대중 신민당 후보에 간발의 차이로 승리한 데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해 5월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즈음부터 민주화 요구가 각계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박정희는 다음해인 1972년 10월17일 위헌·위법한 국가비상사태를 전격 선포했다.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권력을 강화하고 집권을 연장하기 위한 전형적인 친위 쿠데타였다.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했으며, 정적들을 체포·구금했다. 박정희는 당시 강창성 보안사령관에게 직접 야당의원 15명의 명단을 건네며 체포하도록 지시했다. 최형우·박종률·김녹영 등 야당 정치인들이 포함됐다. ‘40대 기수론’의 대표 주자들인 김대중과 김영삼의 정치자금과 조직을 캐려는 목적이었다. 이들은 보안사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박정희는 9일 뒤인 10월26일 유신헌법을 선포했다. 입법·사법·행정 3부 위에 군림하는 비상대권을 갖고 종신 대통령을 꿈꿨다. 그는 1979년 10월26일 구중궁궐 속 권력 암투 속에서 ‘혁명 동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질 때까지 무소불위의 철권통치를 했다.
전두환의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전두환 신군부가 최규하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삼아 전권을 휘두르려는 쿠데타였다. 전두환도 정적 제거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당시 체포된 인사는 김대중 김종필 이후락 박종규 등 정관계 인사와 리영희 문익환 등 재야인사들이었다. 전두환은 14일 뒤인 5월31일 국가 통치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립해 위원장에 취임했다. 국보위는 군 실세 14명과 장관 10명으로 구성돼 내각 기능을 했다. 입법·사법·행정부 위에 군림하는 비상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그해 10월에는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입법기구를 만들어 5공화국 수립을 위한 법적 토대를 구축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과 진술들로 미뤄보면, 윤석열은 박정희와 전두환처럼 비상대권을 거머쥐고 삼권 위에 군림하며 강권 통치를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회를 무력화시킨 뒤 별도의 입법기구를 구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계엄선포 당일 밤 국무회의에서 최상목 부총리에게 건넨 쪽지엔 `비상계엄 입법기구의 예비비를 마련하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전두환의 국가보위입법회의를 구상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또한 그의 강권 통치를 뒷받침하는 권력기관으로는 기존의 검찰 외에 방첩사(옛 보안사)와 정보사, 경찰이 참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과 핵심 주동세력 김용현·여인형·노상원은 그렇다치고,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과 곽종근 특전사령관, 이진우 수방사령관, 그리고 영관급 장교들까지 가담하고 나선 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군사독재 정권 종식 이후 군인들은 병영으로 돌아갔다. 민주주의 공고화 과정을 거치며 다시는 정치의 세계에 발을 담그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오판이었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독재자의 친위 쿠데타에 가담하도록 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폐쇄적인 군대에서 육사 중심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정치 성향이 강한 군인들이 사조직을 꾸리도록 방치한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5.16은 육사 8기, 9기 중심의 일단의 군인들이, 12.12와 5.17은 하나회가 그 중심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사조직을 둘러싼 논란들이 계속됐으나 그렇다 해도 쿠데타 음모와 실행까지는 가지 않았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이들을 부추긴 게 그 전과 다른 점이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주도하는 친위 쿠데타는 상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더 높으니 가담 유혹에 빠졌을 수 있다. 이들은 잠시나마 유신정권과 5공 정권 때 쿠데타에 가담한 뒤 권세를 휘두르고 영화를 누렸던 선배들을 떠올렸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사태에서 관료 그룹들의 행태도 문제적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보인 한덕수 국무총리의 행동은 일반 시민들의 인식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졌다. 국정 혼돈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켜야 할 막중한 책무를 가졌음에도 그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정치권에 떠넘겼다. 아무리 관료는 영혼없는 존재라 하지만 너무나 무책임했다. 윤석열의 내란 음모에 어떤 형태로든 연루되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할 일이 아니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나라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했는데 그는 그렇게 책임을 떠넘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보신의 끝판왕이다. 이런 그의 태도는 1980년 5·17 쿠데타 때 최규하 대통령의 처세를 떠올리게 한다. 1979년 12월 과도기 대통령을 맡은 최규하가 1980년 ‘서울의 봄’ 때 정치 일정을 앞당겼다면 쿠데타라는 상황까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정치 일정 단축이란 유신헌법 개정과 새 대통령 선거를 말한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신현확은 나중에 “최규하 대통령하고 호흡이 잘 맞았다면 민정 이양이 제대로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5·17 싹쓸이를 불러온 최규하 씨는 (신군부가 자기를 업어주리라는 기대 속에) ‘민간 정부 출범이라는 국민에게 한 약속을 위배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김충식 저 ‘5공 남산의 부장들-권력, 그 치명적 유혹’)
이번 내란 사태를 보면, 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민주화가 됐지만 독재자에 절대 충성하거나 아부하고, 잘못을 알고서도 모른 체하며 따르는 자들은 여전히 권력 주변에 많이 존재한다는 걸 목도하게 된다. 16세기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들에서 온 나라가 독재자의 손아귀에 통째로 떨어지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탐구했다. 그의 작품에는 독재자 주변에서 그를 도와주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셰익스피어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스티븐 그린블랫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폭군-셰익스피어에게 배우는 권력의 원리’에서 독재자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번 내란 사태와 관련해 주목되는 유형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대통령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들이다. 이 부류에는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자 마지못해 명령을 따르는 이들, 적극적으로 명령을 이행하면서 그 과정에서 뭔가를 챙길 수 있기를 바라는 이들, 그리고 고위직 인사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고통받게 하는 잔인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포함된다. 아마도 김용현·여인형·노상원 등 이번 사태의 행동 대장들이 어떤 부류일지 짐작이 갈 것이다. 수사 결과가 맞다면 선관위원장 심문을 위해 야구방망이를 준비시킨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잔인한 게임을 즐기는 축에 속할 것이다. 그린블랫은 “셰익스피어의 세계에서 그리고 실제 세계에서, 야심만만한 독재자는 이런 사람들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다소 음흉한 사람들이다. 왕이 파괴적인 인물이라는 걸 알지만 왕 덕택에 자신들이 이익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번 사태에 적용하자면 관료 그룹과 국민의힘 친윤계가 여기에 속할 것 같다. 세 번째는 왕에게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왕의 주장을 정당하다고 여기고, 왕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으며, 왕의 감정 표현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윤석열의 부정선거 의혹 주장을 믿는 극우 지지층 일부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밖에 왕의 위협 앞에서 겁을 먹은 사람들, 사태 파악이 잘 안되는 사람들, 그리고 왕이 형편없는 줄 알지만 중심을 잡는 어른들과 제도가 있어 나라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거라 믿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마디로 겁쟁이이거나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이들이다. 셰익스피어는 작품들에서 이런 자들이 합해지면 나라는 집단적 패망에 이를 것이라고 암시한다.
윤석열의 내란 기도가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여전히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이 있다. ‘윤석열 사수대’를 자임하고 있는 경호처장과 일부 국무위원들, 대통령실 고위층들, 국민의힘 친윤계, 그리고 일부 극우 지지층들이 그들이다.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윤석열이 탄핵당하고 내란죄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윤석열처럼 극우 유튜브 채널을 보며 집단최면에라도 빠진 것일까. 그러나 윤석열에 대한 국민들의 판단은 끝났다. 이들 비호세력이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의 시대는 끝났다. 그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살아날 방법은 없다. 3일에는 경호처가 막아줬지만 그게 과연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왕정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다. 윤석열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라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이므로 경호처는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에 따라 법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도 내란 공범이 되는 비극적 운명을 맞게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빨리 그와 절연을 선언하라! 그게 자신들도 살고 혼돈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
박현 논설위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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