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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6 (월)

반짝이는 순간과 경외심에 가득 찬 새해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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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외심을 짧게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각자가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라는 것을, 저마다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개인들의 연결망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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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의 산에 다녀왔다. 활화산이 내뿜는 연기를 바라보며 오래 걸었고, 발아래 대지가 그저 정적인 땅이 아니라 심원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지고 여전히 꿈틀대는 거대한 동적 실체임을 실감한 시간이었다.



나이 들수록 점점 더 산에서 안식을 찾게 된다. 산에 가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내 마음대로 분류해보자면 ‘자아 확장형’과 ‘자아 소멸형’이 있다. 나는 후자다. 산에 오를 때 가슴 부푼 성취의 희열이나 수직 정복의 쾌감 대신 광대무변한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이 희미해지는 느낌을 사랑한다. 사람의 희로애락에 무관심한 산에 머물다 보면 내 근심은 바람에 흩어지고 투명해진 내 안을 무심한 공기가 가득 채운다. 허공을 배경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는 티끌처럼 작고 사라질 운명인 인간은 다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을 웅변하는 것만 같다. 묘연하고 광대한 자연 안에서 나 자신도 휙 스쳐 지나가는 작은 빛에 불과하다는 사실의 실감은 종종 짜릿하다.



이 느낌, 독립된 ‘자기’라는 감각이 사라지고 주위 경계가 흐려지며 내가 나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라는 감각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이 느낌의 이름은 ‘경외심’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만, 무딘 마음으로는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여성학자이자 노년학자인 마거릿 크룩섕크는 지난달 이 지면에 소개한 책 ‘나이 듦을 배우다’에서 면역 체계가 약해지는 인생 후반기에 더욱 중요한 치유적 정서로 평온함, 감사와 함께 경외심을 꼽았다. 특히 “경외심이 없는 늙음은 전혀 부러워할 가치가 없는 운명”이라고까지 단언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노년에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지 궁금하다면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가 쓴 ‘경외심’을 읽기를 권한다. 나이 듦에 초점을 두지는 않았으나 경외심의 정체와 그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상세히 설명한 책이다. 켈트너는 경외심을 “세상에 대한 기존 이해를 뛰어넘는 거대한 무언가와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그 ‘거대한 무언가’는 내가 즐겨 찾는 산처럼 자연일 수도 있고, 전율에 휩싸일 만큼 아름다운 음악이나 그림일 수도 있으며, 번뜩 깨닫는 통찰처럼 관념적인 것일 수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대통령의 내란 사태 이후 분노와 혼란 속에서도 우리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장면들을 잇달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한밤에 국회로 뛰어가 계엄을 막아낸 시민들, 이제 ‘탄핵봉’이 된 응원봉을 흔들며 광장을 빛의 바다로 만든 청년 여성들, 1980년 광주의 주먹밥처럼 2024년에 쏟아진 선결제 나눔의 물결, 동짓날 밤 남태령에서 매서운 추위를 함께 견뎌내며 끝내 차벽을 뚫고 나아간 농민들과 시민들, 광장 안에서 타올라 소외된 사람들에게로 흘러넘치는 연대의 물결.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하고 물었던 한강 작가의 질문이 실시간 목격자의 감탄이 되어 터져 나오는 시간을 살고 있다.



켈트너는 26개국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떤 상황에서 경외심을 느끼는지 연구한 결과 삶의 여덟 가지 경이를 소개한다. 용기와 친절 또는 역경 극복 사례처럼 타인이 주는 놀라움, 집단 열광, 대자연, 음악, 시각 디자인, 영적 신비적 경외심, 삶과 죽음, 삶의 근본 진리를 번뜩 깨닫는 통찰이 그것이다.



다양한 상황을 아우르는 경외심의 핵심은 자기 초월이다. 일상적이든 아니든 사람이 자기 바깥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일 때라야 느낄 수 있다. 경외심은 깨어 있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 애쓰는 참견쟁이 신경증 환자이자 자기비판과 불안, 우울의 원인 제공자인 ‘자기’의 잔소리를 잠재우고 넘어서야 깃드는 감정이다.



앞서 언급한 노년학자가 경외심이 없는 노년은 부러워할 가치조차 없다고 단언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어릴 때 세상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감탄하는 마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무뎌진다. 세상에 대해 커가는 환멸을 내버려둔 채 극도의 이기심이든 물질 숭배든 공포나 원한, 깊은 슬픔 등 어떤 이유로든 간에 자기 안에만 갇혀 살아왔고 개인의 좁은 관심사를 초월할 힘이 없는 노년은 경외심을 잃어버리기 쉽다.



켈트너는 하루에 고작 5분씩이라도 일상적 경외심을 느낀 사람들이 예술과 삶에 대해 훨씬 호기심이 크다고 썼다. 수수께끼 같고 불가해한 것을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며, 자기 삶을 고립된 생애가 아니라 가족, 이웃, 연결 등 거대한 힘들이 영향을 끼친 결과로 인식하게 된다. 경외심을 짧게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각자가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라는 것을, 저마다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개인들의 연결망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80대의 병약한 나의 어머니는 올해 크게 앓고 난 뒤 자신의 능력치보다 더 큰 생명력의 원대한 힘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그 경이로움이 오래가면 좋겠건만 금세 또 작은 일에 일희일비한다고 한숨을 쉬었는데, 누구에게나 경외의 마음에 자신을 내맡기는 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반짝이는 순간들을 그러모아야 혹독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지 않겠는가.



이제 새해다. 각자가 반짝이는 순간을 찾아내며 살아가는 소중한 일상을 망치지 않도록,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와 비호세력의 시대를 끝내는 경외심을 모두가 만끽하는 시간이 오길 간절히 기원한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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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심을 짧게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각자가 거대한 무언가의 일부라는 것을, 저마다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개인들의 연결망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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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심’(대커 켈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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