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체포 시도] 尹대통령 체포 시도부터 철수까지
3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관들이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경호처와 대치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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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체포팀은 3일 오전 7시 18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공관 구역 정문에 도착했다.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장·대법원장, 군 수뇌부 공관이 밀집한 곳이다. 오전 6시 13분 경기 과천에서 출발한 공수처 검사·수사관 30여 명에 경찰 100여 명이 합류했다. 투입 인원과 체포 계획을 점검한 뒤 오전 8시 4분 공관 구역 정문을 통과해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 영장 집행을 개시했다. 같은 시각, 공수처 출입기자단에 이 사실이 공식 배포됐다.
공관 구역 정문에서 윤 대통령 관저 건물까지는 500m가량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체포팀 앞을 대형 버스 1대가 가로막았다. 대통령 경호처가 이들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설치한 1차 저지선이었다. 경호처 직원 50명과 군인들이 체포팀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공수처 설명이다. 체포팀은 윤 대통령 체포 영장을 제시했다. 김성훈 경호차장은 “우리는 경호법에 따라 경호만 할 뿐”이라며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래픽=이철원 |
체포팀이 1차 저지선을 돌파하는 데 50분가량 걸렸다. 이후 언덕을 100~150m쯤 올라가자 소형 버스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의 소형 전술 차량으로 구축된 2차 방어선이 또 나타났다. 오전 9시쯤이었다. 체포팀은 공관 구역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경찰 30여 명을 추가로 투입, 2차 저지선도 뚫고 150m가량을 더 전진, 대통령 관저 정문에서 200m 지점까지 진입했다. 일부는 산길을 타고 관저 진입을 시도했다. 체포팀 안팎에서 “오늘 내 반드시 체포할 것” 같은 말이 흘러나온 시점도 이때였다.
하지만 오전 9시 50분쯤, 이들 앞에 3차 저지선이 또 나타났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번엔 대형 버스나 승용차 등 10대 이상이 진입로를 완전히 막고 있었다”며 “경호처 직원과 군인들 200여 명이 겹겹이 벽을 쌓고 있어 도저히 뚫고 가기가 불가능했다”고 했다. 1·2차 저지선에 있었던 경호처 요원과 군 병력이 ‘최후 방어선’에 올라와 팔짱을 끼고 ‘인간 바리케이드’를 쳐서 체포팀을 막아섰다는 것이다.
경호처는 일단 공수처 검사 3명만 관저 정문까지 진입하는 것을 허용했다. 윤 대통령이 있는 관저에서 불과 50m가량 떨어진 지점이다. 검사들은 여기서 체포 영장을 제시했다. 변호인단은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이유로 영장 집행을 거부했다. 박종준 경호처장도 “대통령 안위가 먼저”라며 같은 입장이었다. 공수처 검사, 변호인단, 박 처장,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 등이 인근 경호처 건물에서 영장 집행 방안 논의를 시도했으나 역시 불발됐다.
윤 대통령 측의 거부 의사가 완강하자 일부 경찰은 박 처장 등을 특수 공무 집행 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하는 방안을 경찰 지휘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공수처 검사들에게도 경찰의 강경 집행 의지가 전달됐다. 하지만 공수처는 유혈 사태를 우려해 불허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실탄 휴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일부 경호처 직원이 개인 화기를 휴대하고 있었다”고 했다. 체포팀은 오후 1시 30분쯤 영장 집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5시간 26분 만에 철수를 결정했다.
공수처는 6분 뒤 기자단에 집행 중지 사실을 공지했다. 이어 1시간가량 뒤 기자회견을 열고 공관 구역 내에서 발생한 상황을 소상히 설명했다.
[고유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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