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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6 (월)

새해 소원은 최대한 천천히 꼰대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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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신회의 매사 심각할 필요는 없지]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고?

싫은 선배는 그 기회도 없다

조선일보

일러스트=한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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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해 검사지 하나를 준비했다. 다음 항목에 솔직하게 체크해보시오.

조선일보

그래픽=송윤혜


이상은 ‘꼰대능력평가’의 문항들이다. 공신력은 없지만 심리적 공감대만큼은 유의미한 평가로, 내가 직접 만들었다. 결과에 수긍하시는지? 진정한 평가는 결과에 수긍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자기에게 불리하면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꼰대이기 때문.

순식간에 한 살을 더 먹었다. 그래도 새해가 되면 마음이 설레고 괜한 희망이 차올랐는데 올해는 그런 게 없다.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 믿는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볼 때마다 ‘어떻게 하면 잘 늙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답 없는 꼰대만큼은 되고 싶지 않은데! 그런 의미에서 나의 새해 소원은 이렇다. ‘꼰대가 돼 가는 나를 인정하고, 최대한 천천히 꼰대 되기.’

얼마 전까지 기성세대에게 금언으로 여겨지는 한마디가 있었다. 바로 ‘입 다물고 지갑 열어’. 회식을 예로 들면 시작부터 끝까지 상석에 앉아서 ‘일해라 절해라’ 훈화를 늘어놓고, 2차까지 꼭 참석하며 절대 집에 안 가는 상사는 큰일 날 사람이고, 가급적 빠르게 자리를 뜨면서 계산까지 하고 나가는 상사가 그나마 이상적이라 일컬어졌다. 나 역시 그 말에 감화된 사람 중 하나였기에, 후배들 만나는 자리에서만큼은 입은 닫고 지갑은 열려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니 알게 되었다. 후배들은, 싫은 선배한테는 지갑 열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걸. 후배들은 싫은 선배하고는 시간 자체를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맛있는 밥이고 술이고 다 됐고, 그냥 자기들을 내버려두는 어른을 원한다. 단지 그들이 바란 것은 내가 없어 즐거운 자리였다(눈물).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게 그들의 바람이라면 ‘꺼져줄게 잘 살아’라는 심정으로 눈치껏 자리를 떴다. 그러는 동안 느꼈다. 외롭지 않게 나이 먹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거였구나.

젊음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늙어가는 사람이다. 조금이라도 천천히 늙고 싶다면 젊음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젊음 역시 그의 곁에 머물고 싶어야 한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면서, 젊은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어르신이 되어야 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시간은 자본이자 가능성이며, 마음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은 좋아하는 대상에게 시간을 쓴다. 기꺼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 그것이 서로에게 가장 바람직한 존재 아니겠는가.

며칠 전 친구가 암울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나, 노안이래···.” 요즘 들어 가까이 있는 게 잘 안 보여 안과병원을 찾았더니 노안이 왔다는 진단을 들었다고 한다. 친구는 평생 안경은 써본 적 없을 만큼 좋은 시력을 자부했기에 적잖이 충격받은 눈치였다. 늘 쾌활한 친구의 난데없는 좌절이 웃기기도, 안쓰럽기도 해서 말했다. “야, 어쩔 수 없어. 앞으로 더 늙을 일만 남았어! 오늘이 제일 젊어!” 별것 아니라는 듯 내뱉고 나니 머쓱해졌다. 남 일에 쉽게 말을 얹는 것, 좋은 말은 자기만 할 줄 안다는 양 목청 높이는 것. 이게 또 꼰대의 특징 아니겠는가.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아니, 괜찮은 꼰대라도 되고 싶다. 얼굴에 주름을 없애고, 요즘 유행한다는 옷을 입고, 핫 플레이스가 어딘지 꿰고 다니며 꼰대 아니고 싶어 하는 꼰대가 아니라, 최대한 살펴보고 궁리하고 실천하며 젊음 가까이에 있는 꼰대가 되고 싶다. 참고로 나는 위의 검사지에서 다섯 개를 체크했다. 결과는 수긍할 수 없다(눈물).

[김신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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