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해외 클러스터에서 답을 찾다 ] <1> 보스턴
보스턴 진출 기업 3년간 기술수출 12.5조
기술·인재·자금 결합된 세계 최고 인프라
1000개 이상 글로벌 제약·바이오社 밀집
"적극적 네트워킹, 정보 수집이 성공 열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세계 최대 바이오 클러스터인 미국 보스턴·케임브리지(이하 보스턴)에 진출한 국내 신약 개발 기업들이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는 물론 글로벌 빅파마 90%가 자리한 보스턴은 신약 연구개발(R&D)과 사업개발(BD)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첫 국산 항암제 ‘렉라자’도 보스턴에서 태동했다. ‘제2의 렉라자’를 꿈꾸는 국내 바이오 벤처는 보스턴 진출에 도전해볼 만하다는 이야기다.
2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 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현지 자회사 또는 사무소를 세운 기업의 최근 3년간 기술수출 실적은 최대 12조 4897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의 기술수출이 4조 7885억 원(이하 발표 당시 환율 기준)으로 가장 많았고 오름테라퓨틱(1조 5340억 원), 대웅제약(1조 2801억 원) 등이 뒤를 이었다. 같은 기간 국내 기업의 전체 기술수출에서 보스턴 진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7.5%에 달한다.
이들 기업을 비롯해 현재 30개 이상의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보스턴에 둥지를 틀고 성과를 내고 있다. 국산 항암제 최초로 FDA 품목 허가를 받은 렉라자의 원개발사 제노스코가 대표적이다. 보스턴 소재 벤처캐피털(VC)인 케이에스브이글로벌(KSV Global)의 스펜서 남 대표는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도 렉라자 개발 초기에는 풀지 못한 난제들이 많았지만 미국에서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정보를 얻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며 “많은 국내 신약 개발 기업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연구에만 매달리고 있어 안타까운데 이들에게 보스턴이 답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1제곱마일(약 2.6㎢).’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과 케임브리지를 아우르는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이하 보스턴)에서도 신약 개발 인프라가 집중된 켄달스퀘어를 부르는 별칭이다. 지난해 매출 기준 20대 빅파마 중 12곳을 비롯해 1000개 이상의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이 보스턴에 밀집해 있다. 박순만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국지사장은 “보스턴에 답사를 온 한국 기업인에게 인근 투어를 해주고 나면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게 느껴진다”며 “그들의 신약 후보 물질을 사갈 수 있는 빅파마들이 즐비한 이곳에서 희망에 부푸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바이오벤처들이 보스턴에서 꿈꾸는 것은 ‘제2의 렉라자 신화’다.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렉라자는 제노스코가 2008년 보스턴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고 LG화학 출신인 고종성 박사를 총괄 책임으로 임명한 뒤 발굴한 첫 신약 후보 물질이다. 렉라자가 보스턴에서 태동했다는 사실은 신약 개발 성공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보스턴은 생명과학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기 가장 좋은 생태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보스턴에 모여 있는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맥거번뇌연구소·브로드연구소 등 연구기관은 최첨단 연구 성과를 창출해낸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지난해 보스턴 소재 기관에 지원한 R&D 지원금이 52억 1900만 달러(약 7조 7000억 원)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할 정도다. 이들이 사이언스·네이처 등 학술지에 발표하는 연구 결과는 미국 최대 규모의 벤처캐피털(VC) 자금(약 15조 8000억 원)과 결합해 사업화로 이어진다. NIH 지원액 상위 20개 병원 중 8개가 보스턴에 위치해 있어 신약 개발 기업의 원활한 임상도 뒷받침한다.
이 같은 환경은 국내 바이오벤처에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풍부한 인재 풀에서 빅파마 근무 경험이 있는 고급 인재를 채용해 R&D와 사업개발(BD)을 진행할 수 있는 데다 빅파마와 직접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벤처가 보스턴 생태계에 들어가 대학·병원 등과 협업하며 후보 물질을 개발하고 현지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빅파마와의 공동 연구, 나아가 기술수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다만 이를 위해서는 기업·연구소·병원 등이 도보 거리에 밀집한 보스턴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화해 현지 전문가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수시로 열리는 네트워킹 행사를 비롯해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스펜서 남 케이에스브이글로벌(KSV Global) 대표는 “계열 내 최초 신약(First-in-Class), 최고 신약(Best-in-Class)을 꿈꾼다면 보스턴에서 비슷한 연구가 있는지, 해당 물질에 관심을 보일 만한 기업이 있는지 확인하고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받는 과정이 필수”라며 “현지 관계자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신뢰를 쌓고 누가 뭘 원하는지 파악하는 ‘정보력’은 보스턴에서 성공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오름테라퓨틱은 보스턴의 이점을 활용해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오름은 2023년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2024년 버텍스파마슈티컬에 잇따라 기술수출을 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2019년에는 진행하던 신약 프로젝트를 접어야 하는 위기도 있었다. 이후 단백질분해제(TPD)를 항체약물접합체(ADC) 형태로 항체에 결합하는 ‘TPD² 기술’로 오름이 도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피터 박 전 최고기술책임자(CSO)였다.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는 지난해 12월 한 강연에서 “오름이 보스턴에서 ADC 권위자인 피터 박을 영입하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의 오름이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미국에서는 높은 비용을 치르더라도 회사를 키울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필요한 인재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버텍스와의 계약도 오름 현지 직원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성사시켰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보스턴 진출을 원하는 기업은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22년부터 진행 중인 ‘C&D 인큐베이션 센터’ 사업에 선정되면 70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이 이용하는 켄달스퀘어의 공유오피스 케임브리지이노베이션센터(CIC) 입주 비용과 함께 맞춤형 컨설팅, 현지 네트워킹 등을 지원을 받는다. 지원 기업은 매년 10곳씩 늘어나 현재 30개 국내 기업이 CIC에 입주해 있다.
현재 보스턴에서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에 대한 관심도는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오름 외에도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인제니아테라퓨틱스 등 최근 3~4년간 보스턴에 진출한 기업들이 성과를 거두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 지사장은 “최근 미국에서는 ‘차이나 리스크’로 중국 기업들이 철수하고 있어 우리 기업에는 최적의 기회”라며 “이런 시점에 기술력 좋은 국내 기업 가운데 ‘제2의 제노스코’ ‘제2의 오름’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