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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일)

‘책방 보면 돌아간다’는 시인의 상처, 당신의 상처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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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1년 등단한 김이듬 시인이 아홉번째 시집을 펴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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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l 김이듬 지음, 타이피스트, 1만2000원


순수는 어떻게 위협받고 배반되는가, 열망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올해 첫 시집으로 소개하는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의 주제를 추리자면, 하여 결국 ‘시인은 어떻게 벌을 받는가’가 아닐까 싶다. 제목을 빗대자면, 배금·자본 세계에서, 어떤 순정과 진심은 밤에 쓰인 ‘명작’의 이튿날 아침 초췌한 몰골 같다. 되레 죄의식과 수치, 불면이 죗값이고 족적이 된다. “세상이 비루하고 비참하므로/ 나의 창작도 그러하다는 말로/ 나와 대립한다”(75쪽)

그토록 대결한 밤을 지나 겨우 남겨진 자기고백이 이 시집일 것이다. 나의 창작도 비루하고 비참하므로, 말하자면 살아남은 서정과 순수다. ‘선험’과 ‘추체험’으로 범람하는 시 풍조에서 김이듬의 신작 시집은 경험에 착근하여 돋을새김된다. 현실을 시로 다시금 ‘경험’하고 ‘추인’하는 것이다.

김 시인에게 동네책방은 특히 ‘사변’이다. 랭보의 무기 사업만큼 불의하지도, 김소월의 신문지국처럼 구태하지도, 한 시인의 문창과 입시 족집게 강사일처럼 불온하지도 않다. 순수와 열정에 대한 모반적 현실이 여기 시들로 하도 선연하니, 기자가 최근 김 시인과 나눈 말쯤은 잊어도 좋겠다.

―많은 이유로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서점을 차립니다.

“…. 또 많이 닫지요.”

―오래 운영하고 그만두셨는데 저분들에게 조언도 줄 겸 서점에 대한 기억, 경험을 글 청탁드리면 어떠세요?

“………. 아뇨, 못 쓸 것 같아요. 책방 문 닫고 한동안은 동네서점만 나와도 길을 돌아갔어요.”

늦은 밤 귀가해 앉은 채 쪽잠을 청한 뒤 아침 서점으로 달려간 날들을 시인은 들려줬다. 2017년 경기 일산에 문 열어 나홀로 책방지기로 손님을 맞고, 400회가량의 북토크를 기획했다. 마을의 문화공간이 되고 책도 좀 팔리길 바랐을 뿐인 ‘책방언니’의 꿈은 가령 탈모로 배반됐다. 2019년 영어 번역된 시집 ‘히스테리아’가 이듬해 국내 최초의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받은 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을까. 한차례 이사 끝, 코로나 팬데믹 중인 2022년 3월말 폐업한 서점은 아직도 에스엔에스(SNS)에 ‘책방이듬’으로 자취가 남아 있다.

책방의 생애사는 이 시대 ‘작은 진심’들의 패배사이기도 하다.

“내가 마지막으로 팔았던 책은 알베르투의 시집”으로 시작하는 시 ‘인사하러 왔어’는 책방이듬의 일단락을 시로 추인한다. 새 세입자가 들어와야 책방을 뺄 수 있으니 시인은 “덫에 걸려든 산양을 본 사냥꾼처럼” 빵집 열겠단 신혼부부에게 “호수와 숲도 바라보이는 목 좋은 자리라며 거짓말”한다. 진실이 없진 않다. “주민들이 영혼의 양식은 사지 않아도 맛있는 빵은 사 먹을 거라고 낙관한” 것, 그러나 다시 들른 빵집도 결국 폐업하고 말았다는 것. 수십 개 필명을 지녔던 알베르투(페르난두 페소아)처럼, 죄의식, 수치, 연민, 절망, 자조, 원망, 모순, 연대의 여러 김이듬과 혼자 된 김이듬의 만남이 이 시의 행보다.

절망과 실패의 시적 추인은 무엇을 뜻하는가. “늦가을 저녁에 내리는 비를/ 거리에서 나란히 둘이 맞으면// 누구라도 상대방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는 시상(116쪽)으로, 고국의 부모를 찾아 헤매는 해외입양인, 이주민, 여행자, 환자들, 투신한 노인, 가족, 가난한 시인과 예술가를 ‘명작을 쓰는 밤’에 거듭 불러 만나는 일이다. 함께 감각하는 것이렷다. 시인은 ‘경험’한 이들을 시집 말미 산문에 좀 더 상술하며 “나를 이곳에 내려 주고 간 사람”이라 이른다. 하지만 “여행은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그렇게 끝나지 않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대로라면, 내려 주고 간 자리 남은 이는 ‘나’가 아니라 ‘당신’이다.

금전의 인과율에 따른 세계에서, 시가 명작이 되겠는가, 명작이 되어 누구를 구원하겠는가. 시인이 시인도 건사하지 못한다.

“지붕 고치는 사람처럼 나는 사라져 가는 직업의 사람입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걸작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직장을 잃게 될까 봐 의사들은 집단 파업했을까요?”(‘목동의 밤’)

게다 “문장들 다 부서지자 아침”이다. 그럼에도 “시가 나를 살렸다,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는 김이듬 시인의 사석 나직한 한마디를 기억해볼 뿐이다. 그게 진심이다. 시 쓰는 밤의 존엄.

“그렇습니다 맞은편 복도로 햇살이 파도처럼 밀려오죠 나는 밤새 책상을 부여잡고 표류한 셈이죠 그게 제 역할 같아요 나는 어떤 게 명작인 줄 몰라요 맥베스 세트장에서 내게 말했죠 그래도 너는 순정을 가졌잖니 대표님 순정부품 같은 말씀 마세요 너무 비싸거든요 눈을 뜨면 나는 조그마한 구역의 무대 뒤에서 뜨거운 조명을 만지고 있습니다”(‘밤엔 명작을 쓰지’ 마지막 연)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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