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Cover Story] 소니, 엔터기업으로 변신할 동안 인텔은 PC용 반도체만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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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40년 이상 투자해 개발한 반도체 x86에 계속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텔, 파트너사 및 고객을 위한 가치와 차별화의 실질적인 원천이며, 향후 x86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인텔은 x86 가치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2024년 10월 31일, 팻 겔싱어 당시 인텔 최고경영자<CEO>)
“올해 우리는 두 개의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출시했습니다. ‘헬다이버즈 2′는 큰 인기를 끌었고, ‘콘코드’는 결국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이 경험을 기반으로 두 게임 모두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2024년 11월 8일, 하야카와 사다히코 소니 수석부사장)
2025년 새해가 밝기 약 두 달 전.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 회사의 분기 실적 발표회가 열렸다. 두 회사는 양국의 ‘간판 기업’이란 공통점이 있지만 처해있는 상황은 ‘극과 극’인 상태다. 소니는 지난해 도쿄 증시에서 시가총액 3위로 올라서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인텔은 ‘몰락’이란 수식어가 붙을 만큼 거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가장 최근의 실적 발표회에서 두 회사의 ‘톤’은 처한 상황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x86이라는 PC용 중앙처리장치(CPU)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비판을 받는 인텔은 여전히 과거의 대표 상품인 x86에 매달리는 모습이었다. 반면 게임과 영상 콘텐츠로 사업 영역 전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소니는 자사의 실패한 게임 콘코드를 언급하며 반성했다. 콘코드는 소니가 약 3500억원을 들여 8년간 개발한 게임이지만 부정적인 평가로 출시 12일 만에 서버를 닫은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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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회사의 다른 태도는 수십 년간 회사를 이끌면서 맞이하는 위기와 기회에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소니의 창업은 1946년, 인텔은 1968년으로 전자 회사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매우 오래된 축에 속한다. 그렇다면 2025년 전에 없는 위기를 맞은 한국 전자 업계에 두 기업의 대응은 롤 모델 또는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까. 새해를 맞아 WEEKLY BIZ가 이들의 선택을 되짚어 봤다. 분석에는 두 기업의 실적 발표회 녹취본과 당시 외신 보도, CEO들의 자서전 등을 활용했다.
◇배경: 암담했던 소니, 희망찼던 인텔
먼저, 달력을 20년만큼만 거꾸로 넘겨본다. 2005년, 특히 변화가 빨랐던 전자 업계에선 새로운 산업이 속속 등장하던 중이었다. 당시 소니는 위기였다. 2003년 4월, 불과 이틀 만에 주가가 27%나 폭락하는 ‘소니 쇼크’를 맞았다.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한 데다 아이팟으로 대표되는 MP3 플레이어의 등장에 소니의 대표 제품인 워크맨이 무대 뒤로 사라져 갔다. 소니는 1946년 창업 이후 처음으로 2005년 외국인 CEO로 하워드 스트링어를 영입했다. 그리고 소니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위기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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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소니에 21세기는 위기의 시작과도 같았다. 1980~1990년대 뛰어난 디자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워크맨·바이오(VAIO) 노트북·트리니트론 TV를 탄생시킨 소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소니라면 어떻게 만들지 생각하라”고 직원들을 닦달할 정도로 뛰어난 기업이었다. 그러나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MP3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애플이 아이튠스 같은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했지만 소니는 과거에 집착했다. 카세트테이프를 대체한다며 내놓은 미니 디스크(MD)는 소니의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꼽힌다.
소니는 TV나 게임기 시장에서도 실패를 이어갔다. 삼성·LG전자에 맞서기 위해 내놓은 최고급 TV, 가정용 수퍼컴퓨터 역할을 하겠다며 출시한 플레이스테이션 3 등은 비싼 가격 때문에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결국 콘텐츠 사업 부문을 키우겠다며 기용한 프로듀서 출신 스트링어 CEO는 ‘소니 역사상 최악의 CEO’란 평가를 받으며 2011년 물러나야 했다. 소니는 2009~2014년 연속 적자를 냈으며, 2012년엔 국제 신용 평가사 피치에서 ‘투자 부적격’ 수준인 신용 등급 ‘BB-’를 받기에 이른다.
다시 2005년으로 돌아와서, 그해 인텔은 커다란 기회를 맞이했다. PC용 CPU 시장의 절대 강자로서 이미 탄탄한 입지를 가진 인텔이었다. 그러나 당시 CEO였던 폴 오텔리니는 더 큰 욕심이 났다. 실리콘밸리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유명한 신생 기업 엔비디아를 인수하자고 이사회에 제시했다. 인수 대금은 무려 200억달러(약 29조원). 그러나 다른 기업을 인수한 전례가 없는 데다 “(엔비디아의 주력 상품인) GPU가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지배할 것”이라는 설득이 이사회에 먹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19년 뒤 엔비디아는 자신을 인수할 뻔했던 인텔을 대신해 미국 대표 주가지수인 다우평균에 편입되는 역전을 이뤄냈다.
인텔의 이 같은 오판에는 지나친 자신감이 한몫했다.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고든 무어가 만든 ‘무어의 법칙(반도체 성능은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을 따라 인텔은 계속 반도체 시장을 평정했다. IT(정보 기술) 버블이 터지기 직전의 시총(2000년 8월 5027억달러)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인텔 시총은 21세기 내내 2000억달러 언저리를 유지했다.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해내는 세계 최고의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군림했다. 인텔의 주무기 x86은 1978년 출시된 제품이지만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통해 시장 1등을 유지했고, 지난해 3분기까지도 시장점유율이 61.6%에 달했다.
◇전개①: 소니의 부활… 전자에서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소니의 부활은 2012년 새로운 ‘구원투수’ 히라이 가즈오 CEO가 등장하면서 본격 시작된다. 사실상 경질된 스트링어 전 CEO의 후임으로 앉은 히라이는 전자 사업에만 집착하고 있던 소니에 구조 조정의 칼날을 빼 들었다.
히라이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전통적인 소니의 관점에서 보면 ‘이단(異端)’이었다. 2021년 그가 펴낸 책 제목이 ‘소니 재생-변혁을 이뤄낸 이단의 리더십’일 정도로 그는 소니 역사에서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일본인이지만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성장했다. 게다가 그는 소니에서는 비주류인 게임·음악 부문에서 주로 일했다. 미국인의 성향을 가진, 비(非)전자 출신이 CEO로 앉게 된 셈이다. 히라이는 책에서 “소년 시대부터 일본과 해외를 오가며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전자가 주류인 소니에서 음악과 게임 등 출세와 거리가 먼 사업부 경력을 쌓았다. 이단아로 인생을 살아온 게 내 리더십의 바탕이 됐다”고 썼다.
그는 CEO에 오르자마자 기자회견에서 “수익성이 낮은 TV 사업에서 벗어나고, 1만명의 인원을 감축하겠다”는 구조 조정 계획을 내놨다. 대신 모바일, 카메라, 게임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전통적인 강세를 누렸던 전자 제품 대신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겠단 의지였다. 실제 그는 PC 사업 부문인 ‘바이오’ 브랜드를 매각했다. 간판 사업이었지만 실적이 저조했던 플라스마 TV 사업도 정리했다. 대신 스마트폰·자율주행차의 필수 부품인 ‘이미지 센서’에 투자해 이 부문을 글로벌 시장 1위에 올려놨다. 히라이의 구조 조정엔 ‘복합 기업 할인(conglomerate discount) 해소’라는 원칙이 있었다. 복합 기업 할인은 그룹 전체의 가치가 계열사 전체 가치의 합보다 적은 상황을 뜻한다. 대기업의 계열사가 부가가치를 충분히 내지 못해 계열사 간 시너지가 적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 히라이는 그룹 전체 가치에 마이너스 요소가 있는 사업은 기존 명성과 관계없이 처분했다.
히라이가 소니의 구조 조정을 맡았다면 2018년부터 새로운 CEO로 앉은 요시다 겐이치로는 소니의 신(新)산업인 게임·콘텐츠 부문을 키워냈다. 2000년 기준 전체 매출 중 전자 사업의 비율이 69%에 달했던 소니는 2020년 이 비율을 21%까지 낮췄다. 대신 게임과 음악, 영화 사업부를 크게 키웠다. 2000년 9%에 불과했던 게임 비율은 2020년 30%까지 커졌다. 음악(11%), 반도체(11%), 금융(8%), 영화(8%) 등으로 균형을 이룬 것도 특징이다. 요시다 회장은 2023년 “소니는 기술 기반의 창조적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자사를 정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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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②: 인텔의 실수… 오픈AI도 엔비디아도 놓쳤다
소니가 전자 부문을 과감히 정리하는 구조 조정으로 체질 개선을 했다면 인텔은 과거에 발목을 잡혔다. 과거의 영광에 붙잡힌 채 소극적으로 투자했고, 정작 투자한 부문에선 중복 투자의 비효율성까지 보였다.
7~8년 전 오픈AI 투자를 주저한 건 인텔엔 뼈아팠다. 로이터에 따르면, 인텔은 2017~2018년 수개월 동안 오픈AI 지분 15%를 10억달러에 매입하는 협상을 진행했다. 당시 협상 옵션 중에는 하드웨어를 인텔이 원가에 제공할 경우 오픈AI의 지분을 추가로 15% 준다는 방안도 포함됐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CEO였던 밥 스완은 생성형 AI가 가까운 미래에 출시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거래를 접었다. 오픈AI의 현재 가치(800억달러 추산)를 따져보면 당시의 결정으로 120억~240억달러의 투자금 회수 기회를 날린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엔비디아 인수, 오픈AI 투자 거절 등의 사례를 일컬어 “수십 년 동안 실리콘밸리의 지배적인 반도체 회사가 기회를 잇따라 놓치면서 최근의 ‘골드 러시’에서도 밀려나게 됐다”고 평했다.
인텔이 과거의 영광인 PC용 CPU에 집착한 점은 WEEKLY BIZ가 분석한 지난 10년간 인텔의 매출 비율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데스크톱·노트북 등 PC의 CPU를 공급하는 부문을 인텔에선 CCG(Client Computing Group)라 부르는데 이 부문 비율이 2015년 58.2%에서 지난해(3분기) 54.9%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최근 스마트폰·태블릿 PC 보급으로 PC용 CPU의 쓰임새는 점점 줄고, 대신 AI의 발전과 함께 데이터 서버용 CPU의 쓰임새는 크게 늘었다. 그러나 CPU 강자인 인텔은 이런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PC용 CPU에만 매달렸다. 2021년 취임한 겔싱어 CEO가 기존 ‘데이터 센터’ 부문을 ‘데이터 센터 및 AI’로 이름까지 바꿔가며 이를 극복하려 했으나 뒤늦은 시도였고, 심지어 명칭 변경 이후에 매출 비율은 기존 33%대에서 28%대로 더 낮아졌다. 겔싱어는 2023년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도 “우리는 주기율표의 모든 원소가 소진될 때까지 무어의 법칙을 잘 지키고 발전을 주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과거의 법칙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는 동안 데이터 서버용 CPU와 같은 새 시장은 AMD에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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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또 다른 패착은 ‘종합 반도체 기업’에 집착했다는 점이다. 인텔이 세상 반도체의 대부분을 만들던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엔 반도체의 ‘수직 계열화(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두 가능한 형태)’를 이룬 인텔의 시스템이 잘 통했다. 그러나 남의 설계를 바탕으로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파운드리’ 회사들이 본격 성장하면서 인텔은 제조 기술력에서 뒤처지게 됐다. 대만의 TSMC가 애플의 스마트폰용 반도체(AP)를 대량생산하는 등 고객을 늘렸고, 더 세밀한 반도체를 더 실수 없이 만드는 노하우를 쌓아가는 동안 인텔은 이런 기회를 놓쳤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 관계자는 WEEKLY BIZ에 “인텔의 가장 큰 문제는 반도체 설계와 제조까지 모두 하던 기존 모델에 너무 집착한 것”이라며 “결국 이를 분리하기로 결정했지만 이미 시장에선 후발 주자가 됐고, 이로 인해 자원(투자액)은 과도하게 분산됐으며, 첨단 공정 개발이 지연됐다”고 분석했다.
◇결말: 소니, IP 기업으로 완벽 부활, 인텔은 매물로까지 거론
결국 오늘날 두 기업의 성패는 과거의 성공에 얼마나 집착했는지로 갈렸다. 인텔은 헤어날 수 없는 경영난에 구원투수로 데려왔던 겔싱어 CEO가 사실상 경질되고, 후발 주자인 퀄컴에 인수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반면 소니의 주가는 도쿄 증시에서 지난해 12월 장중 한때 25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소니는 게임·영화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저력을 자랑하는 지식재산권(IP) 기업으로 변모했다. 일본 내에서만 1억5000만부 넘게 팔린 만화 ‘귀멸의 칼날’을 자회사 애니플렉스를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일본 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소니가 판권을 가진 만화 스파이더맨은 영화·게임·애니메이션 소재로 활용했다. 2020년 출시한 플레이스테이션 5는 누적 판매량 5000만대를 돌파했다. 2012년 11월 98억달러까지 곤두박질쳤던 시총은 2024년 연말 기준 1303억달러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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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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