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학원가 모습.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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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 될까 봐” 학부모 불안 노리는 사교육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나 좋은 엄마이고 싶은데, 후회하면 안 되는데, 그런 마음이에요.”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이모(41)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그놈의 평균, 남들 하는 만큼은 해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했다.
헤럴드경제와 만난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로 이씨와 같은 ‘불안’을 가장 많이 꼽았다. 교육비 부담이 과도하고 그 효과도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변 학부모들의 분위기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소마→소마프리미엄→황소’. 초등학생 학부모들이 흔히 따르는 수학 사교육의 정석 과정이다. 암기식 공부가 아닌 해결력을 길러준다는 이른바 ‘사고력 수학’ 학원이다. 각 학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입학 시험인 ‘레벨테스트’가 있다. 이들 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학원도 있다. 이씨는 “황소 안 가면 정말 큰일 나는 건지 나도 알고 싶다”며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서 뒤쳐질 수 있으니 일단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입뿐 아니라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이 시작돼 사교육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헤럴드경제가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전국 학부모 833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 20~29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사교육비 지출을 늘리는 원인에 대한 답변으로 ‘상대평가 등수 경쟁’이 30.8%(443명)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부족한 학교 교육의 질’ 21.7%(312명), ‘맞벌이 가정 증가에 따른 돌봄 수요 확대’ 18.7%(269명) 등이었다.
백병환 사걱세 연구원은 “현재의 상대평가는 ‘일정 기준의 성취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 정도는 불문하고 ‘옆 친구’ 혹은 ‘자신보다 더 잘할지 모르는 불특정 다수’와 끊임없이 경쟁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헤럴드경제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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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근육 발달시켜야” 유치원 다니기도 전에 사교육 시작
영유아 대상 사교육도 오래 전부터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씨 자녀는 3세 때부터 사교육을 받았다. 창의력과 수리력을 키워준다는 교구 수업 ‘프뢰벨’이 시작이었다. 방문 수업으로 20분에 8만원, 교구 장만에 100만원이 들었다. 수업에 쓰는 교재를 전부 구입하면 400만원이 넘는다. 교구는 소근육 발달, 전집 수업은 언어 발달 명목이다.
이씨는 “요즘 난독증 치료 받는 아이들도 많은데 이 수업을 들으면 모두 해결된다는 이야기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부모가 해주는데 나만 안 하면 ‘나쁜 엄마’가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설문조사에서 교육비 지출 규모는 연령별 차이는 있지만, 영유아라고 해서 결코 적지는 않았다. 영유아 부모들의 평균 사교육비는 71만1000원이었다.
이는 연령과 함께 점점 높아져 초등학교 1~3학년 84만4000원, 초등학교 4~6학년 94만6000원, 중학생 119만원, 고등학생 153만7000원이었다.
노후, 저축, 자가…하나씩 포기한다
사교육 열풍 속에서 학부모들은 하나둘씩 포기하는 것이 늘었다. 남편이 대기업 직장인에 다니는 전업 주부 강모(48)씨는 ‘내 집 마련’을 포기했다. 강씨는 “영어 유치원 200만원 등 월급 전부를 다 쓴다”며 “부모님 도움 없이 자가를 마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저축은 꿈조차 꾸기 어렵다. 두 아들 교육비로 총 320만원을 쓰고 있는 한모(47)씨는 오래 전에 개인 연금 저축 보험을 해지하고 노후 대비는 따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마저도 모자라 자신의 직장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며 식비를 아끼고 있다. 한씨는 “노후 대비를 위해 맞벌이를 선택했는데, 노후는커녕 교육비에 쓰기도 벅차다”고 했다.
사교육을 포기한 학부모를 기다리는 건 죄책감이다. 박모(48)씨의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은 태권도 등 예체능 학원만 다니고 있다. 사교육 효과를 믿지 않아서다. 한 가지 후회가 있다면 자녀가 영재원 입학을 원해 영재원 대비 학원을 고민했다가 포기한 것이다.
“아이한테 맹목적인 투자는 하지 않아요. 그래도 학원에 보냈더라면 영재원에 들어갈 수도 있었을텐데, 좋은 기회를 제가 놓치게 한 것 같아요.” 박씨는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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