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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카터 장례식, 정적의 아들이 추도사… 당파 뛰어넘은 이런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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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제럴드 포드 前대통령

1976년 대선서 승부 겨룬 정적… 퇴임 후 공익활동 함께

“현대사의 전직 대통령 중 가장 가까운 관계”

9일 장례식서 포드 아들이 추도사

조선일보

생전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왼쪽)과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 /포드 대통령 재단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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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별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장례식이 9일 워싱턴DC 북서부 국립 대성당에서 엄수된다. 여기에는 카터와 반세기 가까운 우정을 자랑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버락 오바마·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 부부가 총출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터가 생전에 했던 부탁에 따라 바이든이 추도사를 할 예정인데, 미 정가는 2006년 먼저 세상을 뜬 고(故)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아들 스티븐이 낭독할 추도사에 더 주목하고 있다. 카터와 포드 두 전직 대통령의 관계는 미 정치에서 당파를 초월한 우정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1913년생인 포드는 중부 네브래스카주(州), 1924년생인 카터는 남부 조지아가 각각 고향이다. 공화당 소속인 포드는 1973년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이 뇌물죄 수사 등으로 사임하자 이 자리를 승계했다. 이듬해 8월에는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닉슨이 하야하자 대통령직도 승계했다. 포드는 미 헌정사상 유일무이하게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이다. 베트남 전쟁 패배와 워터게이트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1976년 대선에서 재선을 도모했지만 카터에게 패배했다. 정적(政敵)인 두 사람은 경쟁적인 캠페인을 치렀지만 카터는 이듬해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과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나라를 치유하기 위해 전임 대통령께 감사드리고 싶다.” 카터는 대선 기간 포드가 닉슨을 사면해 준 것을 쟁점화했는데, 대통령이 되어서는 닉슨 하야에 따른 사면의 불가피성과 ‘국민 통합과 치유’ 성격을 인정한 것이다.

피플지는 “카터가 재임 기간 포드와 자주 만나 조언과 지원을 구했다”고 했다. 카터가 재임 기간 대내·대외 문제 할 것 없이 무능(無能)을 노출하면서 1980년 대선을 앞두고 포드가 ‘카터의 재선에 반대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81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암살 사건을 계기로 이집트로 가는 여정을 함께했고, 여기서 한때 우호적이었던 관계를 회복했다. 카터 센터에 재직한 스티븐 호치만은 “이 관계는 친밀한 우정으로 발전했고, 결국 현대사의 전직 미 대통령 중 가장 가까운 관계로까지 발전했다”고 전했다. 카터 센터를 세워 퇴임 후 다양한 분야에서 비영리 활동을 전개한 카터는 포드를 자문위원으로 모셨고, 선거 개혁 등을 포함해 25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같이하며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냈다. 카터 센터 직원들이 “포드를 사실상의 ‘명예 의장’이라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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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로잘린 카터(왼쪽) 여사와 베티 포드 여사. /X(옛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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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의 배우자 로잘린(2023년 별세), 포드의 배우자 베티(2011년 별세) 간의 우정도 그에 못지 않았다. 두 사람은 1970년대 중반 조지아 주지사로 있던 카터가 지역을 찾은 포드 부부를 관저에서 대접한 것에서 비롯됐다. 로잘린은 나중에 베티에 대해 “그녀는 우리가 지금까지 맞이했던 가장 저명한 손님이었고, 너무나 따뜻하고 친절해서 우리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두 영부인은 약물 남용, 정신 건강 같은 사회 문제에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다. 로잘린은 2011년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베티의 장례식에서 이런 추도사를 전했다. “어떤 역사가들은 우리들의 남편인 지미와 제리(포드)가 백악관을 떠난 후 어떤 대통령들보다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고 말한다. 베티와 나도 비슷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카터는 2007년 세상을 뜬 포드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했다. 포드의 애칭인 ‘제리(Jerry)’를 호명하며 “백악관을 누린 후 지난 25년 동안 누린 큰 축복 중 하나는 우리를 묶어준 강렬한(intense) 개인적인 우정이라고 우리는 자주 동의했다.” 포드도 카터에 대한 추도사를 생전에 미리 써놨다고 하는데, 카터가 ‘역대 최장수 전직 대통령’으로 지난달 29일 100세의 나이에 별세하면서 본인이 직접 이를 읽지 못하고 배우인 막내 아들 스티븐의 입으로 대신하게 됐다. 포드 대통령 재단은 카터를 추모하는 성명에서 “포드 가족은 카터의 특별한 삶과 유산을 기린다”며 “정치 무대에서는 라이벌이었지만, 우리 아버지와 카터의 개인적인 우정은 국가를 치유하고 강화하기 위한 공통의 믿음·비전을 통해 더 깊어졌다”고 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공화)과 팁 오닐 하원의장(민주), 바이든과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 조지 H.W. 부시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미 정가에서는 당파와 정치적 대립을 넘어 서로 존중·협력하고 우정을 쌓아 국민들의 박수를 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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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부친인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을 대신해 추도사를 읽게 될 아들 스티븐 포드. /X(옛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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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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