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비시장 덮친 70대 운전자 ‘치매’
지난달 31일 오후 70대 남성이 몰던 승용차가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을 덮쳤다. 이 사고로 40대 남성 1명이 사망했고 12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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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1명, 부상자 12명이 발생한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 차량 돌진 사고를 낸 운전자 김모(75)씨는 2년 전부터 치매를 앓았다고 진술했다고 경찰이 1일 밝혔다. 양천경찰서는 이날 김씨가 치매 진단 후 약물을 복용해 왔으나, 사고 당일이나 최근엔 치매 관련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은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김씨의 1종 보통 운전 면허는 2022년 9월 적성검사 후 갱신됐다고 한다. 하지만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시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 진술이 전반적으로 흔들리고 있어 정확한 치매 진단 시기를 조사 중”이라고 했다.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 환자가 10%가 넘는 상황에서 운전면허 갱신 적성 검사 때 치매 검사는 7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나마 적성 검사 합격률이 100%에 육박할 때도 있다. 검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픽=박상훈 |
김씨 차량은 전날 충돌 당시 시속 80km에 육박했다. 사고 직후 차량 시동을 끄지 않고, 6분 가까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등 인지 능력이 저하된 모습을 보였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지난해 7월 9명이 숨진 시청역 참사 운전자도 당시 69세였다. 2022년 3월 부산에서 치매 초기 8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버스 정류장을 덮쳐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작년 11월 서울 은평구에서도 70대 운전자의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1명이 다쳤다.
치매는 초기·중등도·중증 3단계로 구분한다. 초기 치매 단계에서도 기억력 저하, 시간과 장소에 대한 혼란, 주의력 및 집중력 저하, 판단 지연 등이 안전 운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치매 운전자는 건강한 고령 운전자보다 추돌 사고 위험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도 치매를 증상의 경중과 무관하게 면허 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은 의료 기관에서 치매 진단을 받으면 경찰청으로 자동 통보되고, 경찰청은 한국도로교통공단으로 다시 통보해 적성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이 통보 기간을 특정하지 않고 있어 실제 검사를 받기까지 수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또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어 운전이 가능하다는 전문의 소견서를 제출해 검사에 합격하면 계속 운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는 등 치료를 게을리하거나 치매 증상이 갑자기 나빠지는 환자가 운전대를 잡을 경우 이번 사고처럼 ‘도로 위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 2023년 기준 운전면허 소지자는 3443만6680명. 이 가운데 75세 이상 운전자는 2.91%인 100만906명, 60세 이상은 815만4886명으로 전체의 23.7%다. 이 중 5%에게 치매가 발병했다고 가정해도 40만명 이상의 ‘치매 차량’이 도로를 달리고 있는 셈이다.
치매가 생겼다고 강제로 운전을 그만두면 이동에 제약이 생길 수도 있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상실감이 커져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매는 환자마다 증상이 달라 일률적으로 운전을 금할 수는 없지만 발병 후 기관 간 통보 체계를 강화하고 검사 주기를 줄이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고령 취업자 수가 많아 이동권 보장 문제도 있다”며 “고령 운전자의 차량 80%에 페달 오작동 방지 장치가 장착된 일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구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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