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창간한 월간 ‘현대문학’ 70주년 맞아 기념 특대호 출간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
“인류의 운명은 문화의 힘에 의존된다. 때로 민족은 멸할 수도 있고 때로 국가는 패망할 수도 있으나 인류가 남겨놓은 문화는 결코 그 힘을 잃은 적이 없다… 이러한 문화의 기본적인 핵심은 문학이다.”
올해로 창간 70년을 맞은 월간 ‘현대문학’ 1955년 1월호(창간호)에 실린 창간사다. 당시 유일한 종합 문예지로 출범했다. 독립운동가 출판인 김기오(1900~1955), 조연현(1920~1981) 문학평론가, 오영수(1909~1979) 소설가가 의기투합했다. 각각 1대 사장, 주간, 편집장을 맡았다. 결의에 찬 창간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협의에 있어서의 문학은 일종의 언어예술에 그칠 수도 있으나 광의에 있어서의 문학은 철학, 정치, 경제 등 일체의 학문을 대표할 수도 있다. 이는 문학이 인생의 총체적인 한 학문인 까닭으로서 다른 어떠한 예술보다도 사상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중략) 본지의 창간을 실천한 것은 문학이 이와 같은 문화의 기본적인 핵심임을 깊이 인정한 까닭에서이다.”
조연현(왼쪽) 현대문학 초대 주간(1955~1981)과 최동호 6대 주간 (1993~1995). /현대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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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장수 문예지 ‘현대문학’은 창간 7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특대(特大)호를 1일 출간했다. 1955년 1월 창간 이후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었다. 이번이 841호.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의 그림 두 점을 표지화로 정해 서로 다른 두 버전의 표지를 제작했다. 단편소설 10편, 시 20편, 중편소설 1편 등 총 456쪽에 달한다. 통상 단편소설 5편, 시 10편을 싣는데, 이번엔 분량을 대폭 늘렸다. 두툼하고 묵직하다.
70년간 총 625명의 문인(文人)을 배출했다. 황동규·정현종·오규원 등 시인 351명, 이범선·최일남·박경리·이문구·최인호·조정래 등 소설가 158명, 김윤식 등 평론가 80명, 기타 36명. 2000년대 이후 등단해 주목받는 소설가 최은미·정용준·오한기·임현·예소연, 시인 장이지·김승일·황인찬·유계영·양안다·유선혜 등도 모두 현대문학 출신 문인이다. 한국 문학의 산실이나 다름없다. 창간 이듬해인 1956년부터 ‘현대문학상’을 만들어 신인 작가를 발굴했다. 1978~1989년까지는 문학 단행본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상을 줬고, 1990년부터 오늘날까지는 문예지에 수록된 작품 중 가장 돋보이는 단편소설·시·평론을 선정해 수여한다.
표지화(畵)로도 유명하다. 창간호는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로 불리는 김환기(1913~1974)가 그렸다. 문학진·이중섭·변종하·천경자·장욱진·서세옥 등 한국 미술계의 거목들이 거쳐 갔다. 박서보, 이우환, 이불, 서도호 등도 표지화를 장식했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줄리언 오피,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도 표지화로 실었다. 현대문학 측에 따르면, 이는 ‘국내외 아티스트의 가장 멋진 작품을 소개해 이 시대 예술의 바탕이 되는 아름다움을 알려야 한다’는 8대 주간이자 전 사장인 양숙진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
왼쪽부터 영국 팝 아티스트 줄리언 오피(2009년 6월호), 프랑스 조각가이자 추상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2010년 4월호), 이탈리아 설치 미술가 마우리치 카텔란(2023년 4월호)의 표지화. /현대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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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문학상과 수십여 년 전통의 문학잡지가 경영난에 휘청대는 시대. 그러나 ‘현대문학’은 한국 문학의 맥(脈)을 묵묵히 잇는다. 이는 창업자 김기오의 의지가 크다. 교과서를 펴내는 ‘미래엔’ 출판사가 모기업이다. 김영정(52) 현대문학 대표는 “창업자인 증조부께서 ‘기업이 망할 때까지도 현대문학은 계속해라’라고 말씀하셨다”며 “한 나라 문화의 축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수익성을) 고민하지 않고 잡지를 발간할 수 있다”고 했다.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해야만 하는 것, 지켜내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우리의 자긍심이기도 하고요.”
‘현대문학’의 1대 주간이었던 조연현 평론가가 1976년 5대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윤재근·김윤성·신동욱·감태준·최동호·감태준(재임)·양숙진 주간이 뒤를 이었다. 지금은 김영정 대표가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다. 김 대표는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과 끊임없이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이 지면을 지키고 열어 놓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학을 위해서 이 자리에서 조용히, 꾸준히, 오래 이 틀을 가져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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