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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우크라, 러시아 가스관 잠갔다... 전쟁 이후 유럽시장 지배 막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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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이용 계약 연장 안돼

조선일보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공급이 새해 첫날부터 ‘0’이 됐다. 러시아가 유럽 가스 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사진은 슬로바키아로 천연가스를 보내기 위해 양국 국경 근처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천연가스 공급 설비.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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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 시각)부터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산(産)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됐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적국인 러시아의 전비(戰費) 마련에 우크라이나의 설비와 인력이 이용된다는 비판이 커졌다. 그러나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유럽 각국의 천연가스 수요와 관련 기업 간 복잡한 계약 구조 때문에 공급이 유지되다가 전쟁 발발 3년 만에 계약이 끝나면서 막힌 것이다. 러시아가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벌어들이는 자금은 연 50억달러(약 7조3500억원)에 이른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생산량을 바탕으로 산업 생산, 난방·취사 등에 필요한 천연가스를 공급하며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러시아 가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러시아의 유럽 가스 지배 막 내려

이날 우크라이나 에너지부는 성명을 내고 “러시아 가스 경유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가스프롬과 우크라이나 나프토가스가 2019년 12월 맺은 5년짜리 천연가스 수송·공급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서, 이날부터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공급이 ‘0’이 된 것이다. 로이터는 “한때 유럽 가스 시장을 장악했던 러시아가 이번 계약 만료로 유럽 시장 지배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1970년대부터 독일 등 유럽의 자금과 기술력을 들여와 시베리아 가스전을 개발하고, 여기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등을 거쳐 공급하며 유럽 에너지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러시아는 1984년 완공된 우크라이나 우렌고이 가스관을 시작으로 벨라루스에서 폴란드로 향하는 야말(1993년), 독일과 직통하는 노르트스트림 Ⅰ (2011년), 흑해를 통과하는 투르크스트림(2020년) 등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을 잇달아 건설하며 2021년엔 유럽 천연가스 수요의 40% 이상을 공급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하기 전인 2022년 3월에는 EU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액이 53억달러(약 7조8000억원)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폴란드와 계약 분쟁에 휩싸였던 야말 가스관은 러-우 전쟁이 발발한 뒤인 2022년 4월 끊어졌고, 우크라이나를 통하는 육로 대신 발트해 루트를 만들며 러시아와 독일, 두 나라의 밀착 관계를 보여주던 노르트스트림 Ⅰ은 그해 8월 공급이 중단된 데 이어 9월엔 가스관이 폭파되면서 더는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이번에 우크라이나를 거치는 가스관까지 막히면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보내는 가스관은 튀르키예를 거쳐 헝가리, 세르비아 등으로 향하는 투르크스트림 하나만 남게 된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이번 계약 종료로 러시아 가스프롬의 손실은 연간 5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와 올해 우렌고이와 투르크스트림을 통한 수출 규모가 비슷했던 것을 감안하면 러시아의 대(對)유럽 천연가스 수출이 절반으로 쪼그라드는 셈이다.

◇러-우 전쟁이 제 발등 찍어

가스 공급 중단에 따라 유럽 내 분열 조짐도 나타난다. 당장 천연가스 공급이 빠듯해지고, 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 등으로 천연가스를 보내는 과정에서 ‘교통비’를 받아왔던 슬로바키아의 반발이 심하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지난달 29일 EU(유럽연합) 집행위에 “러시아산 가스를 차단한다는 젤렌스키의 일방적 결정에 대한 암묵적 수용은 잘못이고, 긴장을 고조해 상응 조처가 뒤따를 것”이라며 항의 서한을 보냈다. EU가 올 초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추가 규제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옛 동유럽 국가 사이에서도 헝가리 등 친러 국가와 폴란드, 체코 등 친서방 국가들의 균열이 예상된다.

자신이 일으킨 러-우 전쟁 결과로 유럽 에너지 시장을 잃게 된 러시아는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국으로의 천연가스 수출이 2021년 170억㎥에서 2023년 220억㎥로 늘고, LNG(액화천연가스) 수출도 같은 기간 20억㎥가 늘었지만, 유럽 시장에서 줄어든 물량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정용헌 전 아주대 교수는 “러-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노르트스트림 Ⅱ까지 연결되며 러시아의 유럽 에너지 시장 지배는 더 강화됐을 것”이라며 “에너지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러-우 전쟁은 러시아가 제 발등을 찍은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조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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