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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이대화의 함께 들어요] [7] 올해는 한국 인디 3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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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넛 ‘말 달리자’

조선일보

크라잉 넛의 '말달리자' 음반 커버


‘말 달리자’ 가사만큼 이상한 노랫말도 드물 것이다. 노래방에서 목청 터져라 수십 번을 불러 봤지만 여전히 왜 닥쳐야 하고 왜 달려야 하는지 논리적 연결이 알쏭달쏭하다. 흔히 알려진 1집 버전은 그나마 순화된 것이다. 최초에 실린 1996년 ‘Our Nation 1’ 버전을 들어보면 마지막에 통성기도 하듯이 하나님 아버지도 찾는다. 그때 음악 관계자들은 노래를 들으며 ‘이게 뭐야?’ 했다.

이상한 음악을 부른 그룹부터 이상했다. 이름 크라잉 넛은 버스를 타야 할 돈으로 호두 과자를 사 먹는 바람에 돈이 모자라 걸어간 데서 유래했다. 그때 ‘월넛’이란 단어를 못 떠올려 그냥 ‘넛’이 되었다. 데뷔 일화도 독특하다. 라이브 클럽 드럭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악기 포지션도 안 정해진 엉성한 밴드여서 사장이 당황했다. 연주를 시켜 봤는데 사실상 점프하고 난리를 피운 데 가까웠다. 사장 이석문은 ‘얘네들 뭐지’ 싶었다.

녹음과 유통도 틀이라곤 잡혀 있지 않았다. ‘말 달리자’가 처음 실린 ‘Our Nation 1’에서 크라잉 넛은 7곡을 이틀 만에 녹음했다. 유통 노하우도 부족해 홍대 앞 공연장과 레코드 가게에 직접 들고 갔다. 소위 말하는 초짜여서 음반을 주었으나 대금은 돌려받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그런데 히트했다. ‘이게 되네?’ 하는 순간이었다. 마니아들의 소문과 PC통신에 힘입어 화제가 되더니 나중에는 TV에도 진출했다.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 ‘닥쳐!’ 가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대표성 가진 히트곡이 생기자 더 많은 사람이 인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내내 홍대 앞 밴드들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올해는 한국 인디가 3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클럽 드럭에서 커트 코베인 1주기 추모 공연이 열린 1995년을 보통 원년으로 잡는다.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의 다양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한국에도 이런 음악이 있어?’ 싶은 다양한 대안 장르가 홍대 앞과 PC통신을 매개로 봇물처럼 쏟아졌다. 델리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등 많은 스타가 배출됐다.

요즘 뮤지션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이게 되겠어요?’ 하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해서 좋지만 대중적 반응은 기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단순히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이돌, 트로트 등 특정 계열에 관심이 집중되는 현실을 기반으로 내린 냉정한 판단이다.

인디 30주년을 맞은 올해는 ‘이게 되네?’ 얘기를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소외됐던 장르가 조명받고, 묻혔던 보석이 발굴되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쳇바퀴 돌듯 정체된 지금 가요계에서 새로운 물결의 역동성이 더욱 커지길 소망해 본다.

※ 유튜브 영상 | 말달리자 - 크라잉 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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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화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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