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
정책의 사전적 정의는 정부나 조직이 특정한 목적이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립한 계획과 실행의 결과를 말한다. 어느 조직이 그렇듯 정부의 정책 역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측면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체계적 접근을 말한다.
종종 우리는 정책을 혁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혁신을 뭔가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어떤 문제에 대해 개선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 사전적인 의미 역시 비슷하다. 누군가는 혁신을 기존 방식이나 구조를 바꾸거나 효과적으로 개선하거나 근본적으로 새로운 해결책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혁신의 결과로 정체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물론 이점에 이의 있다고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런 인식에는 그만큼의 허점이 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 혁신(革新)이라는 단어는 현대적 해석으로는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한다는데 무게를 두지만 원래는 '가죽을 무두질한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꾼다'거나 '단순한 개선을 넘어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만큼이나 짧게는 1개월, 길게는 1년을 걸치는 가죽을 가공해 부드럽게 만들어 가는 지난한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이 만만한 일이었을 리도 없다. 우리 선조들이 성가시고 손 많이 가는 일에 붙이는 '질' 자를 떡하니 여기 붙이고 있는 것만 봐도 알만하다.
이 과정을 따져보면 물로 가죽을 씻어내는 일부터 재나 석회를 푼 용액에 담가내고 다시 다듬고, 가죽을 나무틀에 고정하거나 손으로 당겨 또 다듬고, 다음으로 기름이나 밀랍을 바르고, 연기로 훈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니 이 혁신의 본질이 칼로 무를 자르듯, 알렉산더 대왕이 단칼에 잘라버렸다는 괴벨리온의 매듭이라는 전설 같은 해결책을 찾는 것이 능사는 아닐 수도 있겠다.
2025년이 밝았다. 올해가 격동의 시기가 될지 그래서 정책의 의미는 퇴색하고 정치라고 불리는 행위들이 우리 사회의 앞자리를 차지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새해인 셈이다. 이즈음 올해 정부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렴풋이나마 떠오른다.
혼란스러운 만큼 정책을 담당한 누군가는 책임감을 다하고 혼란스런 환경에서도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우선순위를 따져 신중하게 조정하고 개선해 나가는데 진심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무두질을 하던 거친 손을 가졌을 무두장의 마음을 떠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한 땀 한 땀의 손길이 거칠고 뻣뻣했을 원래의 가죽을 부드럽고 몸을 감싸 바람을 막게 해주는 옷이 되는 것처럼 올 한 해야 말로 정책의 무두장들이 묵묵히 중심을 잡아야 할 때다. 지금이야말로 국민의 관점에서 밀어둔 정책이 있다면 어찌 풀어내야 할지 고심해 보는 시간도 되어야 하겠다.
우리가 정책을 논하면서 경(敬)이나 예(禮)를 다하고, 깊은 존경심과 인간 본연의 도덕성을 담아 계획하고 실천하라고 말하는 건 어찌 보면 너무 과한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혼란스럽고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갈 길을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뻣뻣한 정책들과 관행들을 무두질 하는데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많은 이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내놓고 있다. 다들 자신의 처지와 관점에서 정하는 것이지만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취지만큼은 비슷한 맥락인 듯도 보인다. 올 한 해 정책이 가야할 길도 여기서 그리 벗어나지 않을 듯싶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jpark@konkuk.ac.kr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