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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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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비상계엄 뿌리는 12·12… 제왕적 대통령제 바꿔야” [신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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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기념 신년 인터뷰

“비상계엄의 뿌리는 12·12 사태

마음에 안 들면 3권 장악하겠다는

군사 독재 의식 여전히 남아있어”

“제왕적 대통령제에선 불행 반복

분권형제로 개헌하고 협치해야”

“일상의 민주주의 이뤄야 도약

적개심 내려놓고 상호 존중해야”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의 근원은 전두환 정권의 12·12라고 봅니다. 정국이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물리적인 힘으로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하겠다는 생각이 사회 일부에 여전히 남아있는 겁니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두고 “그동안 이뤄온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권위주의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이사장은 그러면서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선 어떤 대통령이든 물리적인 통치 방법에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지금이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할 적기”라고 강조했다.

세계일보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난 17일 경기 의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청사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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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1945년 1월11일, 광복 6개월 전에 태어난 ‘해방둥이’인 이 이사장은 독재 정권 시절엔 다섯 번에 걸쳐 투옥된 재야의 민주투사로, 민주화 이후엔 5선 국회의원과 이명박정부 특임장관을 역임한 개혁파 정치인으로 80년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 이사장은 “대한민국이 100년 이후를 내다보려면 일상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려야 한다”며 “미래 세대는 분노와 적개심을 내려놓고, 상호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7일 경기 의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청사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80년 한국 현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4·19 혁명이다. 4·19혁명 때 나는 경북 영양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당시 교장 선생님이 교육감에 의해 중학교로 좌천을 당했다. 교육청이 교장 선생님을 탄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학생들을 모아 전근 반대 시위를 벌였고, 그 일로 생애 처음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갔다. 당시 우리는 그게 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보름 정도 유치장 살이를 했는데, 그게 내 인생의 전기(轉機)가 됐다. 유치장에 있으면서 민주주의라는 것도 생각해보고, 좋은 정치라는 것도 생각했다. 그때 생각이 내 인생을 관통했다. 당시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4·19 혁명 때의 첫 데모, 첫 옥살이가 30년에 걸친 민주화 운동을 하게 하는 방향타가 됐다.”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부지런하고, 악착같고, 인내심이 강하고, 그리고 교육열 강한 국민성이다. 우리가 민주화 운동을 끈질기게 할 수 있었던 것도 교육 덕분이다. 학교에서 민주주의와 정의, 자유, 평등을 배웠는데 현실의 사회 제도와 정치 제도가 배운 것과 다르니까 학생들이 가장 먼저 저항했던 것이다. 국민성이 우리나라를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하게 했다.”

-국민들이 만든 대한민국 역사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다. 민주화가 이뤄졌기 때문에 산업화가 된 것이다. 노사관계가 건전하게 발전하지 않으면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는데, 민주화됐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와 산업화가 동시에 이뤄졌지만, 어느 것이 먼저냐고 묻는다면 나는 민주화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역사에 좋은 순간만 있진 않았다. 특히 최근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탄핵 소추를 당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그동안 이룬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권위주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계기를 보여줬다. 나는 이번 사태의 근원이 전두환 정권의 12·12라고 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뒤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나지 않고 정상적으로 정권이 교체됐다면 오늘날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군사 독재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잠재돼있는지 알 수 있다.”

세계일보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난 17일 경기 의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청사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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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신군부가 선례를 남겼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정국을 장악해보겠다는 생각도 품었다는 것인가.

“권력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나. 민주화가 돼서 입법·행정·사법권이 뚜렷하게 분리돼있는데, 정국이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물리적인 힘(군대)으로라도 한꺼번에 장악하겠다는 생각이 사회 일부에 잠재돼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의식 속에는 민주주의가 딱 박혀 있지만, 군사 정권을 경험한 이전의 세대에게는 정국이 혼란스럽고 복잡하면 ‘싹 쓸어버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식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행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개헌 논의도 일고 있다.

“국회의원이었을 때부터 내 일관된 주장은 ‘제왕적 대통령제’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대통령이든 불행해질 수밖에 없고 물리적 통치 방법에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지는데, 세상은 마음대로 안 돌아가고 권력은 있으니 마음대로 해야겠다는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게 권력의 함정이다. 지금이 개헌할 적기다.”

-어떻게 손봐야 하나.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한다. 대통령은 외교·통일·국방만 책임지고 내치는 내각이 담당하는 방식이다. 내각은 국회가 각 정당의 의석 비율대로 장관을 임명해 구성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국회에 진출한 모든 정당이 정부에 참여하게 되고, 국정의 공동 책임을 지게 돼 진영 갈등과 지역 갈등이 없어진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했다면 비상계엄은 사전에 없었을 것이다.”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이 2연속 탄핵 소추를 당했다. 보수 진영은 무엇이 문제인가.

“보수의 가치는 변화와 창조다. 보수는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 시대의 가치를 지키는 게 보수인데, 시대의 가치가 고정돼있지 않고 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수는 변할 줄 모른다. 변할 줄 모른다는 것은 창조할 줄 모른다는 것이고, 창조할 줄 모르니까 개혁이 안 되는 것이다.

옛날 것을 답습하는 게 보수가 아니라 옛날의 가치를 새 시대에 맞게끔 지켜나가는 게 보수다. 그런데 보수는 개혁적인 주장을 하면 ‘사쿠라’라고 한다. 변화할 줄 모르고, 창조할 줄 모르고, 화합할 줄 모르는 게 우리나라 보수의 3대 적폐다.”

세계일보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지난 17일 경기 의왕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청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도약을 이루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병폐가 있다면.

“우리나라가 100년 이후를 내다보려면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일상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려야 한다. 비상계엄의 주요 인물들이 충암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충암중·고등학생 등굣길에 계란이 던져진 게 일상의 민주주의가 안 이뤄진 가장 단적인 예다. 바닥 깊이 적개심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 보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적어도 30∼40년 뒤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나라의 외형은 세계 6대 강국이라며 부강해 있는데, 민주주의는 그 수준인 것이다. 일상의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갈등과 분열이 없어지고 협치가 가능해진다. 국력을 결집할 수 있고 나라가 도약할 수 있다.”

-20년 후 광복 100년이 됐을 때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

“통일 한국이 돼야 한다. 100년 동안 나라가 분단돼 있다는 게 말이 되나. 같은 동포이고 민족이니까 서로 왕래하고 화해하고, 또 경쟁하면서 통일이 돼야 한다. 한 체제로 통일되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남북이 자유 왕래하는 연합 국가 형태로 통일이 돼야 한다.”

-지금으로선 먼 현실처럼 느껴지는데.

“끊임없이 인내하며 노력해야 한다. 북한과 대화하려고 하고, 교류하려고 해야 한다. 분단된 민족의 꿈은 통일이다.”

-대일 관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과거는 잊지 말되 현재는 국가 대 국가로 화해하고 협력해야 한다. 현재 화해한다고 해서 과거를 잊으면 안 되고, 과거를 원수처럼 생각한다고 현재에 화해를 안 하면 안 된다. 일본은 식민 통치를 했던 지난날에 대해 항상 사죄의 심정을 가져야 한다. 일본이 과거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는 건 인류 평화를 위해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

-미래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는.

“우리나라의 미래 세대는 분노와 적개심을 내려놓고, 상호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나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남과 더불어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나라 전체에 일상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다.”

의왕=김병관 기자 gwan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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