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욱 부산총국장 |
아름다운 항구와 자연 경관이 있어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곳이 있다. 경남 통영시다. 통영(統營)이라는 지명은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조선 수군의 최대 본영인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면서 유래됐다. 그 전까지는 두룡포로 불렸다. 이후 1955년 9월 1일 통영읍이 충무시(忠武市)로 승격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재통합되면서 통영시라는 이름이 되살아났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듬해인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제를 새로 만들어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에게 통제사를 겸임하게 했다. 지금으로 치면 해군참모총장 역할이다. 1대 이순신과 2대 원균 등 고종 32년인 1895년 7월에 통제영이 폐지될 때까지 약 300년 동안 200여 명이 통제사로 임명됐다.
10년간 임시보관 중인 통제사 사적비. [사진 통영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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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통영시 무전동 783번지 일원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사적비 24기가 발굴됐다. 비석은 길이 1.5m, 너비 60㎝, 두께 30㎝ 크기로 비문을 통해 통제사의 공덕을 기리는 사적비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금까지 확인된 비슷한 매장문화재 발굴 사례 중 가장 큰 규모라 국내 역사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매장문화재 수습조사를 진행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산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통제영의 군사제도와 실제 운영, 재정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비석이 주변에 묻혀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주변 지역에 대한 추가 발굴 필요성도 제기했다.
특히 발굴지점이 조선 시대 한양과 통영을 오가는 대로인 ‘통영로(통영별로)’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은 텃밭으로 사용되는 외진 곳이지만, 과거 역대 통제사들이 부임과 퇴임 때 지나던 길이라는 의미에서 ‘통제사길’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새롭게 조명됐다. 통영시의회 등에서 추가 발굴과 조사·연구를 통해 통제사 연구와 통제사길 활성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한 배경이다.
하지만 발굴된 사적비들이 10년 동안 제대로 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매장문화재는 발굴 후 풍화와 산화 작용이 일어난다. 그런데 발굴된 사적비들이 지금까지 통제영 복원지 한쪽 야외에 가림막만 설치된 채 임시 보관돼 있다. 이렇다 보니 일부 비석은 깨지고 갈라졌고, 음각으로 새긴 글귀도 부서지거나 탈락하고 있다. 땅속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추가 사적비에 대한 발굴 조사도 답보상태라고 하니, 사실상 통영시와 국가유산청이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발굴된 통제사 사적비를 제대로 보존하는 방안을 세우고, 땅속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추가 사적비도 발굴해야 한다. 그래야 문화예술인의 도시라는 명성과 함께 통영이라는 지명에 어울리는 이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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