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2월 초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과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를 운영하는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이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비상장 기업을 뜻하는 ‘유니콘’에 등극했다. 두 기업의 등장으로 올해 우리나라는 ‘유니콘 제로(0)’는 간신히 면하게 됐다. 팬데믹 기간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스타트업 몸값이 치솟으며 유니콘에 오른 기업이 무더기로 나왔으나 2021년을 정점으로 상황이 급반전 중이다.
2022년 이전 유니콘을 졸업한 쿠팡,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크래프톤 등을 제외하면, 현재 국내 유니콘 기업은 현재 비바리퍼블리카(토스)·무신사·두나무(업비트) 등 20여개 남짓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22년 말 기준으로 발표한 국내 유니콘 기업은 22곳인데, 지난해(아크미디어·파두·에이피알·크림)와 올해(리벨리온·에이블리코퍼레이션) 신규 유니콘 기업 6곳이 추가로 탄생했다.
한 번 유니콘이 영원한 유니콘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이들 28곳 가운데 게임사 시프트업과 팹리스 업체 파두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유니콘을 졸업했다. 지난 4월 폐업한 옐로모바일, 현재 기업회생 절차가 진행 중인 위메프 등도 유니콘에서 제외된다.
K-유니콘은 왜 내수 기반 플랫폼이 많나?
국내 1호 유니콘은 2014년 선정돼 2021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며 졸업한 쿠팡이다. 이후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창업해 유니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들 대다수는 플랫폼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내수 중심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 쿠팡을 비롯해 우아한형제들(2021년 딜리버리히어로에 합병), 컬리 등이 그 예다. 반면, 인공지능(AI)·바이오·반도체 등 혁신적인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을 벌이는 이른바 ‘딥테크 유니콘’은 드물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내수 플랫폼 기반 유니콘 비중이 높은 이유로 크게 2가지를 든다. 우선 디지털 전환(DX)에 따른 자연스러운 추세라는 분석이다. 2010년대 스마트폰 대중화 영향으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재화와 서비스를 직거래하는 플랫폼이 발달했고, 이 시장에 일찍 진입한 기업들의 성장세가 높았다는 것이다. 원천 기술을 보유한 딥테크 스타트업에 견줘 기술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고, 투자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도 내수 플랫폼 기반 유니콘이 많았던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인 알토스벤처스의 정인혜 팀장은 “10년 전 기준으로 볼 때,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5대 광역시 인구는 미국의 주요 5개 대도시 인구보다 많았다”며 “인구 밀집도가 높은 만큼 트렌드나 바이럴(입소문)의 확산 속도가 빨랐다. 모바일 커머스 플랫폼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었다”고 말했다.
“VC, 기술력보다 자금 회수에 치중”
자금 시장 측면에서도 내수 플랫폼 기반 유니콘의 높은 비중을 풀이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딥테크 스타트업은 내수 플랫폼 기반 기업에 견줘 창업부터 상장 등 수익을 내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투자자 입장에선 자금 회수에 들어가는 기간이 긴 셈이다. 국내 벤처펀드의 투자 기간은 통상 8년 안팎인데, 원천 기술을 상용화해 수익을 내기까지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고 자금난을 겪다 소멸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나수미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술 스타트업은 투자금 회수까지 굉장히 오랜 기간이 걸리는데, 그 시간을 인내할 수 있는 자본이 국내엔 부족하다”며 “하나의 투자 주체가 전체 기간을 감당하기보다 투자 기간이 짧더라도 (민간 투자를 중심으로) 여러 투자자가 바통 터치하듯이 투자가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거나 미국처럼 10~15년 이상의 장기 모펀드 제도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예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산하에 벤처투자회사인 ‘인큐텔’을 세워 군사정보화 관련 기업에 장기 투자한다. 최근 ‘서학개미’의 인기 종목인 빅데이터 분석 전문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의 첫 투자자도 바로 인큐텔이다.
국내 벤처 투자의 짧은 투자 기간을 투자 주체에 주목해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실제 국내엔 ‘전략적 투자’(경영참여형 투자) 비중이 높은 기업형 벤처캐피탈(CVC)보다 ‘재무 투자’에 집중하는 벤처캐피탈(VC)의 수가 월등히 많다. 대기업 등이 금융회사인 벤처캐피탈을 자회사로 두고 스타트업에 지분 투자를 하는 경우 자사의 주력 사업과 관련한 혁신 기술을 개발한 기업과의 인수·합병(M&A)을 고려하는 만큼 기술 투자에 관심이 많고 투자 기간도 길다. 박문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벤처캐피탈에 견줘 (CVC를 보유한) 대기업에 관련 기술 전문가들이 많다 보니 스타트업이 개발하는 초기 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했다.
유영상 에스케이(SK)텔레콤 최고경영자(왼쪽)와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 에스케이텔레콤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기술 스타트업, 미국서 창업·법인 설립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내수 기반 비투시(B2C) 플랫폼은 (선두 기업들이 시장지배력을 확보해) 지난 10년간 대부분 정리가 끝났다”며 “이젠 창업도 비투시 플랫폼은 많이 안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내수 플랫폼 스타트업 중심의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점차 한계를 맞고 있다는 뜻이다. 인구 감소와 같은 구조적 내수 성장 둔화에다 해당 산업의 시장도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미국에서 창업을 하거나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기술 스타트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에스케이(SK)텔레콤 계열사 사피온코리아와 합병법인을 설립하면서 유니콘이 된 리벨리온은 매사추세츠 공대(MIT) 박사 출신인 박성현 대표가 지난 2020년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회사다. 인공지능 스타트업인 링크(Linq)와 런베어도 각각 2022~2023년 미국에서 한국인이 창업했거나 한국에서 창업 뒤 미국 법인을 세워 해외 진출을 꾀하는 업체다. 정인혜 팀장은 “요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이젠 내수보다 글로벌로 나가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정부도 민관협력 기술 창업 지원사업인 팁스(TIPS)를 통해 기술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2013년 사업을 처음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2800여개가 넘는 스타트업들이 선정돼 모두 13조원 규모의 후속 투자를 유치했다. 김선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중소·벤처기술혁신정책연구센터장은 “올해도 정부가 900곳의 기술 스타트업을 지원하며 빅테크 기업의 씨앗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