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차린 유가족 “남은 유가족에 미안”
“새해 다가왔지만 약속 못 지키게 돼”
사고 현장 주변 밥·커피, 시민들 ‘눈물’
“새해 다가왔지만 약속 못 지키게 돼”
사고 현장 주변 밥·커피, 시민들 ‘눈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의 빈소가 마련된 31일 오전 광주 서구 한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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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낮 12시30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장례식장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희생된 A씨(46)의 빈소가 차려졌다. 태국 국적의 결혼이주여성인 A씨는 지난 29일 전남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사고 희생자 중 한 명이다.
나주에 사는 A씨는 이달 초 남편과 친정인 태국을 방문했다가 귀국하던 길 이었다. 일 때문에 바빴던 남편 B씨는 며칠 먼저 귀국해 사고를 면했다. 빈소에서 아내의 영정을 바라보던 B씨는 “사고 전날 태국에서 출발하기 전 ‘잘 도착해서 연락하겠다’는 통화가 마지막이 됐다”며 고개를 떨궜다.
B씨는 아내의 유골이라도 고향 태국으로 보내주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 B씨는 빈소를 찾은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에 “유골이라도 아내의 고향에 보내주고 싶다. 도와 달라”고 말했다.
이날 A씨를 포함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 일부가 장례절차에 들어갔다. 비교적 시신 훼손 정도가 가벼워 신원 확인과 검안·검시 등 시신 인도를 위한 절차가 모두 마무리된 희생자들이다.
빈소를 설치한 유가족들은 다른 유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조용히 장례를 진행하고 있다. 광주 서구에 빈소를 마련한 또 다른 희생자의 가족은 “취재를 정중히 거절합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빈소를 조문한 강 시장은 “유족들이 먼저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남은 유족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시장은 “오늘부터 일부 희생자들의 장례 절차가 시작되는 만큼 ‘미안해하지 마시라’는 말을 건넸는데도 재차 미안함을 전했다”고 밝혔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사흘째인 31일 무안국제공항 인근에 사고 지점 인근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술과 밥, 과자 등이 놓여있다. 오동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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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공항 대합실에 있는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고 새해를 맞는 상황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족들과 세웠던 새해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무안공항에서 사흘째 누나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이모씨(58)는 “부모 같은 누님이었어요. 평소엔 못 봐도 새해 명절엔 만났는데…”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전남 완도에 사는 이씨의 둘째 누나(63)는 평소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모시는 것도 누나 몫이었다. 딸과 손주와 함께 떠났던 이번 태국 여행은 누나에게는 수년 만에 일상을 벗어난 여행이었다.
이씨는 “지난주 토요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라’며 누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렇게 마지막 여행이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새해가 됐지만 이씨는 매번 만났던 누나 가족을 영영 만날 수 없게 됐다.
사고 현장인 무안공항 남쪽 울타리에도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처참하게 부서진 잔해가 보이는 곳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타까운 죽음,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라는 메모가 붙어있었다.
현장에 즉석밥이나 호떡, 초코파이, 커피음료, 소주, 맥주 등을 놓아두고 간 사람들도 많았다. 하얀 국화꽃도 보였다. 한 여성은 “사고 현장이 이렇게 처참할 줄 몰랐다. 얼마나 무서웠을지”라며 소매를 끌어올려 눈물을 훔쳤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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