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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하는 작은 가족 반려동물, 어떻게 하면 잘 보살필 수 있을까요.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국내 여러 동물병원에서 멍냥이를 만나온 권혁호 수의사에게 반려동물의 건강, 생활, 영양에 대해 묻습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권혁호 수의사의 반려랩과 댕기자의 애피랩이 번갈아 연재됩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Q. 2025년은 ‘푸른 뱀의 해’ 을사년(乙巳年)이라고 합니다. 뱀을 반려동물로 키우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에겐 좀 무서운 동물이라는 인상이 강한데요, 만나본 적도 없는 뱀 왜 이렇게 두려운 걸까요?
A. 어느덧 하루 뒤면 새해가 다가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내년은 ‘뱀의 해’이지만, 뱀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날렵한 머리와 날름거리는 뾰족한 혀, 꿈틀거리는 몸통, 번들거리는 비늘과 때로는 독니를 지닌 뱀의 여러 모습이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기 때문이죠. 그렇더라도 뱀이 싫어하는 이유를 이런 겉모습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뭔가 충분하지 않은 듯합니다.
왜 사람들은 뱀을 좋아하지 않는 걸까요? 도시화된 현대 사회에서 뱀을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뱀 자체를 무서워하는 인식은 존재합니다. 심지어 뱀에 대한 강렬한 공포로 인한 불안 장애를 일컫는 ‘뱀 공포증’(Ophidiophobia)을 겪는 분들도 있습니다. 뱀 공포증은 실제 뱀을 보지 않더라도 사진·영상으로 뱀을 접하거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말하는데요, 미국의 한 조사에서는 성인 여성 38%, 남성 12%가 이러한 뱀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전 세계 인구의 2~3%는 꽤 극심한 수준의 뱀 공포를 갖고 있다니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닙니다.
뱀에 대한 강렬한 공포로 인한 불안 장애를 일컫는 ‘뱀 공포증’(Ophidiophobia)을 앓는 사람들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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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그동안 뱀 공포증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현재까지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뱀 공포증이 인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자극을 피하기 위해 진화한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초기 인류에게 독을 지닌 뱀은 ‘천적’에 가까웠거든요. 뱀을 회피하려고 했던 행동이 후손에게 전달되면서 현생 인류도 뱀의 존재를 빠르게 인식하고,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게 됐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뱀을 본능적으로 식별한다는 사실은 여러 실험을 통해 확인된 바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개구리·거미·꽃과 같은 동식물 사진 사이에 뱀 사진을 섞어 성인과 어린이들에게 보여준 결과, 성인은 물론 뱀에 대한 공포를 학습했을 가능성이 낮은 어린이들까지도 뱀 사진을 먼저 식별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조류·거미 등 다양한 생물과 뱀의 사진을 보여주고 뇌전도 검사(EGG) 결과를 비교했는데, 우리 뇌는 뱀의 사진을 볼 때 시각 정보를 담당하는 영역이 가장 크게 활성화됐습니다. 이런 반응은 화려한 새의 깃털과 뱀의 피부를 같이 제시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지난달 일본 나고야대 연구진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연구를 보면, 인간과 함께 영장류에 속하는 원숭이가 뱀의 비늘에 강하게 반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뱀이 그저 포식자였던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 2011년 미국의 파충류학자 해리 그리니 박사는 1970년대까지 수렵 채집인의 생활 방식을 유지했던 필리핀 원주민 ‘아그타 네그리토’ 부족과 뱀의 관계를 조사했는데요, 뱀과 인간은 서로 먹고 먹힐 일뿐 아니라 같은 먹이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였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사냥 기록을 추적한 결과, 비단뱀이 이 부족 남성들을 공격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기도 했지만 반대로 부족민들이 뱀을 식량으로 사냥했던 기록이 발견된 것입니다. 또 뱀은 부족민이 사냥했던 사슴이나 야생 돼지, 원숭이를 먹이로 삼았기 때문에 인간과 ‘먹이 경쟁’을 펼쳤던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이처럼 초기 인류도 뱀과 경쟁하고 싸웠을 수 있고, 이러한 기억이 유전자에 각인됐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지난 2011년 미국의 파충류학자 해리 그리니 박사 등 연구진은 수렵 채집인과 뱀의 관계가 80만 년의 역사를 공유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공개했다. 사진은 1970년 필리핀 아그타 네그리토 부족 남성들이 고기를 위해 뱀을 사냥한 모습(A)과 비단뱀이 원숭이를 공격한 모습(B). 토머스 헤드랜드/미국국립과학원회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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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뱀 공포증이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2019년 한 연구에서는 뱀에 노출되지 않았던 유아들에게 뱀, 거미, 높은 곳 그리고 낯선 사람 등 다양한 자극에 노출시킨 뒤 관찰한 결과, 공포 반응은 비슷했고 뱀을 더 두려워하는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공포증이 언어적인 정보와 사회적 습득을 통한 학습된 적응 행동이란 주장도 제기됩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과 같이 믿을 수 있는 주변 어른들이 뱀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거나 ‘뱀은 위험하다’는 언어적 반응을 보면서 뱀 공포를 학습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심리적 이유 이외에도 우리가 뱀을 무서워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뱀이 실제로도 위협적이기 때문일 겁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마다 전 세계에서 약 8~14만 명이 뱀에 물려 사망한다고 추정하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뱀을 적대적으로 대하거나 괴롭혀선 안 될 일입니다. 뱀은 먹이사슬의 중간 포식자로서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합니다. 설치류, 새, 양서류, 곤충 등을 먹이로 삼아 특정 종의 개체 수가 너무 늘어나지 않게 조절하고 독수리·매 등 맹금류, 너구리, 족제비, 대형 포유류에게는 먹이원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또 일부 뱀들은 땅에 구멍을 파거나 터널을 만들어 다른 동물들이 공간을 활용하도록 돕는 ‘생태계의 엔지니어’ 역할도 합니다.
최근에는 뱀독을 이용한 의약품들이 개발돼 혈액 응고 장애, 심혈관 질환, 신경계 질환 치료제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살모사 독을 추출해 만든 고혈압약 ‘캡토프릴’, 뇌혈관질환에 사용되었던 항혈전제 ‘트로와글렉스’ 등이 대표적이고요. 코브라 독인 ‘코브라톡신’은 천식과 다발성경화증 치료제로 활용하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현대 의학을 상징하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Rod of Asclepius) 또한 뱀이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 속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뱀이 약초로 동료를 살리는 모습을 보고, 이를 활용해 사람을 살렸다는 신화에서 기인했다. 세계보건기구 누리집, 위키피디아 코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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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랜 세월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뱀은 여러 나라와 문화에서 다양한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성경 속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인 ‘악’의 이미지이지만, 한국에서는 십이지신에 속하는 동물로 풍요·번영·윤회·여생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가집니다.
한국 전통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이무기’ 또한 뱀과 관련한 신비로운 존재로 그려지는데요, 이무기는 ‘용이 되길 꿈꾸는 뱀’으로 묘사되거든요. 한 설화에서는 뱀이 천년 동안 수행을 하면 용이 되는데, 수행을 마치고 밖으로 처음 나와 만나는 사람이 이 뱀을 용이라 불러주지 않으면 다시 이무기가 돼 오랜 세월 다시 수행을 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뱀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될 수도,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을 담았던 게 아닐까요. 비록 오랜 세월 인간에게 공포를 준 존재이긴 하지만, 을사년에는 뱀을 조금 더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권혁호 수의사 hyeokhoeq@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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