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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금)

[현장의 시각] “롯데가 어떤 걸 팔까”보다 중요한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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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올해 인수합병(M&A) 시장의 큰 화두 중 하나는 대기업 구조조정이다. 재정난에 빠진 대기업들이 잇달아 계열사를 매물로 내놓거나 카브아웃(회사의 여러 사업들 중 일부만 떼 내어 거래하는 것)해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에 팔았다. SK스페셜티, 에코비트, 롯데렌탈 등 올해 성사된 조(兆) 단위 거래가 대부분 대기업에서 나왔다.

상반기 IB 뉴스를 도배한 키워드가 SK였다면, 하반기엔 롯데였다. 11월 ‘롯데 유동성 위기설’이 돌연 시장을 덮친 것이다.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의 매각 작업에 착수했으며 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롯데월드타워는 ‘빚 담보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빼도 박도 못하고 롯데 이슈만 쫓다 연말을 맞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다행히도 국내 최대 렌터카 업체 롯데렌탈이 홍콩계 PE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초고속으로 팔리며 불안감이 어느 정도 완화됐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여전히 롯데가 또 다른 자산을 매각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과거 한 차례 매물로 내놨다가 거둬들인 롯데캐피탈, 보유 중인 부동산 가치만 수조원에 달하는 롯데칠성음료 등이 후보군에 오르내리고 있다.

롯데그룹은 이런 표현이 달갑지 않겠지만, 지금의 ‘위기’는 롯데케미칼에서 비롯됐다. 2조원 넘는 무보증 회사채에 대해 사채관리계약 조항 내 재무 특약을 미준수해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오랜 기간 지속된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이 근본적인 이유로 자리하고 있다.

한국 석유화학의 위기는 몇년 전부터 예견돼 온 것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석유화학 수출액은 457억달러(약 67조2600억원)로 전년 대비 16%가량 줄었다. 그 중 중국에 대한 수출액은 170억달러(약 25조원)로, 1년 전과 비교해 1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여파로 지난해 국내 나프타분해시설(NCC)의 평균 가동률은 73%까지 내려갔다. 중국이 설비를 공격적으로 증설하며 2022년 세계 최대 에틸렌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자급자족하게 되자, 전체 수출 물량의 40%를 중국에 의존해 온 한국 기업들이 휘청이게 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중국과 인도에 공격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여파로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가 원유를 싼값에 중국에 팔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석유화학 공정의 원가가 낮아진 것이다. 최근에는 중동까지 정유·석유화학 통합 공장(COTC) 설비를 대거 늘리고 있다. COTC는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원유를 바로 석유화학 제품으로 만드는 공법이다. 원유를 정제해 나프타를 얻고 이를 분해해 기초유분을 만드는 기존 방식과 달리, 원유에서 직접 기초유분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생산단가를 30% 이상 낮출 수 있어 업계에선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업계에 따르면 중동 지역에서 건설될 COTC가 총 8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 910억달러(약 134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 같은 변화에 그나마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회사는 LG화학이다. 전남 여수 NCC 2공장 지분 절반을 쿠웨이트 국영 기업에 팔아 합작법인(JV)을 만들기 위한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나마도 주식매매계약(SPA) 목전에서 진도를 못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웨이트 입장에선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우리 기업이 아닌 쿠웨이트의 편이다.

LG화학의 전통 석유화학 사업 구조조정이 늦으면 늦을수록 우리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는 더 커질 수 있다. 석유화학 업계의 한 관계자는 “큰형님인 LG가 팔아야 롯데케미칼에도, 한화에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적신호는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사업을 LG화학에 통째로 팔거나 협업을 도모해보려 했으나 LG도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결국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초 여수2공장을 셧다운하기에 이르렀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NCC 부문을 통합해 만든 여천NCC는 지난달 회사채 EOD가 임박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보다 신속하고 과감한 대처가 없다면 줄줄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우량 자산을 내다 파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기업들과 정부가 나서서 국가 차원의 ‘원팀’을 이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해외에선 일본의 선례로부터 답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은 1980년대, 1990년대, 2010년대 세 차례에 걸쳐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1980년대 오일쇼크로 인해 석유화학 산업의 과잉 설비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 주도하에 산업구조개선 임시조치법을 마련하고 구조조정을 지원했다. 과잉 설비를 감축하고 생산을 효율화하는 게 주 목적이었다.

일본 정부가 주축이 된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1990년대에도 이어졌다. 아시아와 중동 업체들의 대규모 증설에 맞서 미쓰비시화섬과 미쓰비시석유화학이, 미쓰이도아쓰와 미쓰이석유화학이 각각 합병했다. 그 외에도 설비를 폐쇄하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등 적극적인 구조조정이 단행됐다. 2010년대에도 범용 설비를 통폐합하고 스페셜티 제품 비중을 높이는 작업이 정부 주도하에 이뤄졌다.

석유화학 업계 전문가들은 우리도 정부가 주축이 돼 통합 법인을 만들고, 여러 곳에 흩어진 범용제품 생산 설비를 통폐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게 해서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한편, 나머지는 정밀화학·친환경 플라스틱 등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을 만드는 생산 기지로 특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이런 주장이 나온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풍전등화의 상황에 한국이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놓여있다는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등 당장 당면한 과제가 너무 많아 석유화학 구조조정쯤은 뒷전으로 밀릴까 우려된다. 구조조정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부디 내년에는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M&A 딜 뉴스가 IB업계를 휩쓰는 일이 없길 희망한다.

노자운 기자(j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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