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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금)

[청계광장]가상박물관의 성쇠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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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2020년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은 지구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박물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 세계 박물관의 90%가 문을 닫아야 했다. 관람객 수가 줄고 수입이 급감하면서 여러 박물관이 문을 닫거나 사업을 축소하고 박물관 종사자들은 구조조정에 내몰렸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러 노력이 이어졌는데 디지털 전환이 그 가운데 하나였다.

"박물관에 방문하지 않고도 박물관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박물관은 관람객과 만나기 위한 새로운 접점을 모색했다. 그리고 이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가상박물관(Virtual Museum)이다. 대부분 가상박물관은 360 VR 또는 3D 렌더링 기술을 활용해 박물관의 전시관을 가상공간에 재현해 박물관 경험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기술이 이때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2년 네이버와 협업해 상설전시관을 가상박물관으로 구축했다.

얼마 뒤인 2015년 구글이 익스페디션(Google Expeditions)이라는 교육용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익스페디션은 당시까지 집약된 여러 영상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가상여행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여행지 가운데는 박물관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명소, 자연경관이나 역사 유적지, 그리고 여행사에선 볼 수 없는 쥐라기의 공룡이나 은하계까지 포함했다. 구글은 익스페디션을 학교 수업용으로 지원하며 이를 위해 교사용 태블릿과 학생용 VR 헤드셋 등이 포함된 수업지원 교구도 개발했다. 또한 개인 스마트폰을 사용해서도 볼 수 있도록 조립용 VR 헤드셋인 카드보드(Cardboard)도 제작·보급했다. 카드보드는 재활용이 가능한 골판지로 만들어져 구글의 친환경 정책을 홍보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익스페디션은 2019년까지 약 100만명의 교사와 학생이 사용했다.

여기에 팬데믹이란 환경까지 더해져 가상박물관은 많은 각광을 받았다. 많은 박물관이 가상투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직접 제작하기도 했고, 또 일부는 구글과 같은 IT기업과 협력했다. 서구의 어느 학자는 가상박물관이 박물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우려는 다행히 현실이 되지 못했다. 가상박물관의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기술의 한계다. 통신은 가상박물관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주지만 동시에 제약이다. 품질이 좋을수록 콘텐츠의 무게도 늘어난다. 콘텐츠가 무거워지면 통신품질이나 사용자 환경에 따라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결국 가상박물관은 최고의 품질이 아닌 최적의 품질을 찾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박물관 경험의 본질문제다. 관람객은 박물관을 방문하지만 최종 목적지는 박물관 자체가 아니라 박물관의 전시품 또는 박물관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공간 또는 동선으로 정의된 가상박물관은 그것을 잊곤 한다. 전시관을 그대로 복제한 가상박물관은 온라인 환경에선 필요없는 현실 속 동선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 결과 관람객은 전시품을 감상하기보다 이동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전시해설을 하다 보면 관람객에게 종종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이거 진짜예요?"다. 박물관 전시품은 대부분 진품임에도 다시 묻는 것을 보면 박물관 관람 제일의 목적은 진품을 보는 데 있다. 온라인으로 이 경험을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팬데믹 종식 뒤 가상박물관도 하나둘 사라졌다. 익스페디션도 2021년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러나 온라인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박물관 누리집 접속자는 2배로 증가했고 박물관 소장품 정보와 고화질 이미지를 제공하는 '이뮤지엄'(www.emuseum.go.kr)은 이용자가 계속 늘고 있다. 가상박물관이란 실험을 돌아보며 온라인에서 박물관의 역할과 박물관 경험의 본질을 생각해본다.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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