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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도 인연이 깊었던 역대 최장수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사진)가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100세. 그는 퇴임 후가 더 빛난 단임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1977년 집권 후엔 경제 부진과 외교 실패로 로널드 레이건에 참패하며 4년 만에 권좌에서 내려왔지만, 퇴임 후 국제 평화 및 인권 운동에 매진해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의 별세에 “평화의 수호자”(뉴욕타임스) “아마도 가장 선량한 미국 대통령”(이코노미스트) “원칙을 중시했던 지도자”(폭스 뉴스) 등 진영을 초월해 추모 보도가 쏟아졌다.
1924년 10월 1일에 태어난 고인은 조지아주 자택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다 숨을 거뒀다. 3남 1녀 등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카터 재단 측은 밝혔다. 장례는 약 8일 간 국장(國葬)으로 엄수된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9년 방한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만났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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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고인과 각별한 사이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탁월한 정치가이자 인도주의자를 잃었다”며 “그는 세계 평화를 구축하고 인권을 증진하며 약자를 옹호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추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도 “그는 모든 미국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우리 모두 그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혔다.
카터 대통령은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꿈은 백악관 입성이 아닌 해군 입대였다.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대했으나 부친을 여의면서 귀촌을 결심한다. 땅콩과 목화 농사에 매진하며 지역사회 봉사 및 교육 개혁에 관심을 가진다. 정계 진출은 그가 38세가 되던 1962년 결단했다. 그는 “정치인이 될 생각은 다소 돈키호테처럼 했다”며 “엉망인 공립학교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선 상원의원밖엔 답이 없다고 봤다”고 적었다.
하늘은 그의 편이었다. 그는 민주당 소속 후보로 도전 15일 만에 상원의원 배지를 달았다. 이후 재선에도 성공, 정치적 열망을 키운 그는 주지사에도 도전해 71년 당선했다. 노예제의 상흔이 가시지 않았던 당시 조지아주에서,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판사와 고위 공무원을 대거 임용했다. 이어 대권 도전을 선언하고, 76년 당선했다. “능력뿐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도 갖춘 정부”가 그의 모토였다.
막상 백악관에 입성한 뒤엔 장애물투성이였다. 베트남 전쟁 직후였던 당시 미국은 물가는 급등하고 성장률은 낮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어려운 시기였다. 대외 정책도 역풍을 맞았다. 그가 약소국의 국익도 생각해야 한다며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포기한 것을 두고 공화당이 “국익을 버렸다”고 비판한 게 대표적이다. 여기에 2차 오일 쇼크와 이란의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 등 악재가 겹치며 지지율은 급락했다.
1994년엔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며 한반도 문제에도 적극적이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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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취임 직후 당시 3만명이었던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선언해 당시 박정희 정권을 긴장시켰다. 2018년 기밀 해제된 외교 문서에는 1979년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간 카터와 박 당시 대통령의 설전이 담겨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방위비 증액 의사를 밝히고, 미국 내에서도 철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봉합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봉사 활동과 국제적 평화 문제 등에 헌신했다. 카터 센터를 바탕으로 평화·민주주의 증진과 인권 신장, 질병 퇴치를 위한 활동에 나서며 ‘전 대통령’으로서 더 빛나는 시대를 구가했다.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봉사단체 ‘해비타트 프로젝트’(사랑의 집짓기) 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1994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를 선언한 1차 북핵 위기 때 평양으로 날아가 김일성 주석과 담판한 끝에 북·미 협상의 물꼬를 텄다. 2010년 8월과 2011년 4월 미국인 억류 사건과 관련 ‘디 엘더스’ 소속 전직 국가수반 3명과 함께 재차 북한을 방문하는 등 총 3차례 방북을 했다. 이외에도 에티오피아·수단·아이티·세르비아 등 국제 분쟁 지역에서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중재자로 나섰고,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5년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간과 뇌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고, 2019년엔 낙상으로 뇌 수술을 받았다. 77년 해로하며 “공동 대통령”으로도 불렸던 배우자, 로잘린 여사는 지난해 11월 96세로 별세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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