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인 것은 이렇게 보낸 힘든 시간들이 의미가 없진 않으리란 희망이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윤석열이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이라며 꺼내든 비상계엄은 적어도 ‘반국가세력’이 누군지 명확히 확인시켜준 계기가 됐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바로 반국가세력이다. 종북만 반국가세력이 되는 게 아니다. 반헌법적 계엄과 내란 혐의를 옹호하고, 공개적으로 이를 고무·찬양하는 세력 역시 반국가세력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힘은 이적단체”라고 한 조갑제 대표의 주장에 동의한다.
국가보안법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 법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종북이나 계엄 옹호나 모두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보안법 제1조) 범법자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윤석열을 옹호하는 세력을 ‘극우세력’으로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우익 내지는 보수의 가치가 반민주주의에 있다고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이들을 지칭한다면 ‘반민주주의 세력’이 적절하다.
박근혜 탄핵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볼 때 놀라운 점은 윤석열 옹호 집회에 참석하는 인원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윤석열의 탄핵 사유가 훨씬 위중한데도 말이다. 그만큼 이 사회에서 ‘암약’해온 반민주주의 세력이 많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할 세력은 종북이 아니라 이들 반민주주의 세력이다.
탄핵 여부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지만, 시간이 걸릴 뿐 순리대로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한다. 내란 혐의자들 역시 법의 심판을 받으리라 낙관한다.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이들 반민주세력에 대한 대응 문제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일명 ‘가짜뉴스’에 대한 수사와 처벌 역시 반민주주의 세력을 대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를 돈벌이로 삼는 유튜버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내 신변과 자유가 억압당할 수 있다는 ‘근본적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건 국민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거란 ‘근본적 믿음’이었다. 퇴근길을 돌려 국회로 뛰어와준 국민들께, 탄핵 집회에 ‘가장 밝은’ 응원봉을 들고나온 학생들께, 집회 현장 ‘선결제’로 연대를 보내준 익명의 시민들께 올해가 가기 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은 ‘푸른 뱀’(청사)의 해다. 동양사상에서 푸른 뱀은 치유와 풍요를 의미한다. ‘푸른 용의 해’인 올해는 본래 ‘변화’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해였다. 사실 ‘변화’는 어떤 형태로든 고통을 동반한다. 내년엔 이 고통들이 부디 치유되고 다시 풍요롭기를 희망한다. 여객기 참사로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겪고 있는 유족분들에게도 만번의 애도와 만번의 위로를 전한다.
송진식 전국사회부 차장 |
송진식 전국사회부 차장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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