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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목)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고속도로 휴게소의 ‘소원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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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구 현풍휴게소 소원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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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참사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이 하냥 어둡다. 누구라도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큰 바람을 꺼내어 되새기게 되는 새해 앞이 어수선하다. 새해에는 더 이상 가슴 쓸어내릴 일 없이 평안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기원할 뿐이다.

‘소원의 나무’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을 맡아 하는 큰 나무가 있다. 나무나이 500년의 이 느티나무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 대구 달성군 구간의 마산 방향 현풍휴게소의 낮은 동산 마루에 서 있다.

마을 당산나무였던 이 느티나무는 고속도로가 마을을 통과하게 되면서 베일 위기에 부닥쳤다. 그때 이 자리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짓고, 당산나무는 휴게소의 상징으로 삼자는 결정이 나왔다. 도시 개발 과정에서 보기 드문 좋은 결정이었지 싶다.

현풍휴게소는 건물을 느티나무와 어우러지게 설계하고 뒤편 동산에는 나무를 그대로 보존했다.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며 긴 세월을 살아온 이 느티나무에는 ‘당산나무’의 현대식 이름이라 할 만한 ‘소원의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무를 알리기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 관리팀에서는 몇가지 이벤트까지 덧붙이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나무 앞에 큼지막한 ‘소원의 우체통’을 설치하고 그 옆에는 누구라도 소원을 적을 수 있는 엽서를 비치했다. 이른바 ‘소원 엽서’다. 관리팀에서는 사람들이 정성껏 써 우체통에 넣은 소원 엽서를 모아 전시회도 하고 그걸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엽서에 담긴 사람들의 소원은 다양했다. “이불에 쉬하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어린아이의 소원이 있는가 하면, “병든 아버지의 완쾌를 빈다”는 착한 딸의 소원이 있었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는 자식 향한 엄마의 소원도 있었다.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는 소원들이었다.

더 이상 가슴 철렁하는 사건 사고가 벌어지지 않기를 나무 앞에서 간절히 소원하는 세밑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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