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유지업무 지정은 노동현장에 계엄을 선포하는 일이다. 필수유지업무란 철도, 항공운수, 병원, 통신 등 필수공익사업 중 정지되거나 폐지되는 경우 공중의 생명안전과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다.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되면 노조는 파업 중에도 일을 할 노동자 명단을 회사에 넘기고 회사는 명단에 있는 노동자에게 일하라고 지시할 수 있다. 노동자가 이를 어기고 파업에 동참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파업을 금지하고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한다는 윤석열의 계엄령 4호, 5호와 같다.
필수유지업무 지정이 계엄이라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군이 파업현장에 투입된다. 2013년 447명, 2016년 457명, 2019년 447명의 군인이 철도파업현장에 들이닥쳐 차량을 운전했다. 철도노동자들이 실질적 권한이 있는 정부에 대화를 하자고 하면 정부는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으니 코레일과 협상하라 한다. 막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정부가 사용자라며 군을 대체인력으로 투입한다. 정부의 이중적 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국민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명분으로 필수공익 사업장의 노동3권을 짓밟지만, 정작 경영권은 민간에 넘긴다. ‘필수업무유지율 산정방식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통신민간업체 LG유플러스가 2019년 파업 당시 필수유지업무제도로 90% 이상의 인력을 유지했다고 지적한다. 공익이라는 이름의 필수유지업무제도가 사익을 지키는 방패가 됐다.
적용방법도 문제다. 필수유지업무의 구체적 범위와 파업 시 남겨야 할 노동자 숫자는 노사협의로 정하고 협의가 안 되면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지난 5월 인천공항도 노사협의를 중단하고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다. 사측은 화장실이 더러워 승객이 이용하지 못하면 비행기 탑승을 못해 비행기 이륙에 차질이 생긴다며 청소업무를 필수유지업무로 지정해달라고 했다. 인천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승객이 똥·오줌을 싸지 못해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는 사측 주장을 두둔했다. 비행기 조정과 정비 업무 등은 이미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돼 노동자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나마 청소노동자를 주축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회사는 필수유지업무제로 노동자의 입을 틀어막으려 한다. 올해 인천공항 노동자들의 파업 이유는 안전인력 확충이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국회의결로 330분 만에 해제했고 윤석열 탄핵에 대한 헌재 판단은 국회의결 후 180일 이내에 이루어진다. 필수유지업무 결정은 기한이 없다. ‘필수유지업무유지율 산정방식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지방노동위 초심은 평균 170여일, 중앙노동위원회는 434여일이 소요된다. 필수유지업무인지를 알기 위해서 2년을 기다려야 하고 한 번 결정되면 영원히 파업권을 제한받는다. 계엄이 만든 평화가 독재자의 폭력을 감추듯 필수유지업무로 만든 산업평화는 국민의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을 감춘다. 일터의 문제를 알리는 파업을 마주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가재난이라는 더 큰 사건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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