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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금)

‘피부에 쏙쏙’ 화장품으로 기술 5관왕…‘화장품 GPT’로 통하는 그의 노하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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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 코스맥스 연구원

화장품 피부에 잘 침투하는
양이온 리포솜 신기술 개발
버섯 유래 키토산 성분 이용
전세계 수출길도 활짝 열어

주변에선 ‘화장품 GPT’ 별명
육휴 마치고 새 연구 나설 것


매일경제

코스맥스 김수지 책임연구원. [이충우기자]


화장품 개발은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피부는 외부 물질이 피부 속으로 들어오려는 걸 막으려 하고, 화장품은 피부 장벽을 뚫고 효능 성분을 깊숙이 침투시키려 한다. 화장품 회사가 화장품 성분을 피부에 실어나르는 역할을 하는 ‘나노 전달체’ 기술 개발에 올인하는 이유다.

국내 1위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 코스맥스의 10년 차 연구원인 김수지 책임연구원(36)은 피부 표면이 음이온인데, 왜 대부분 나노 전달체가 음이온 물질로 제조되는지 의문을 품었다. 전달체가 양이온이 되면, 피부 표면이 자석처럼 전달체를 끌어당기지 않을까. 김 책임연구원은 “화장품 성분이 피부 표면에 더 잘 붙으면 흡수량이 늘면서 화장품 효능이 좋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개발한 양이온 리포솜 기술은 올해 주요 기술상을 휩쓸었다. 지난 3월 세계 최대 화장품 박람회인 ‘코스모프로프 볼로냐’에서 혁신기술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는 IR52 장영실상과 대한민국 엔지니어상, 산업통상자원부의 바이오헬스 분야 R&D 우수기업을 잇달아 받았다. 지난 11일에는 산업기술진흥유공 신기술 실용화 진흥 부문에서 국무총리표창을 받아 마침내 ‘5관왕’을 달성했다.

김 책임연구원이 사용한 소재는 모두 알려진 것들이었다. 다만 발상과 제조법이 달랐다. 그는 나노 전달체 ‘리포솜’에 양전하 물질인 키토산 성분을 넣었다. 음이온을 띠던 리포솜은 양이온 리포솜(plussome)이 됐다. 임상시험 결과 이 전달체로 만든 화장품을 쓴 사람의 피부 밝기가 음이온 제품 사용군 대비 1.7배 증가하고, 멜라닌은 2.5배 감소했다. 피부에 더 잘 흡수되는 양이온 리포솜 화장품의 효능이 확인된 것이다. 2021년부터 이 기술을 적용해 출시한 미샤 비타씨플러스 잡티 앰플과 후시다인 바이옴 크림의 누적 매출액은 올해 9월 기준 360억여 원에 달한다.

다 알려진 소재와 기술을 갖고 혁신을 달성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김 책임연구원이 그것을 해냈다. 그는 수년간 우직하게 연구개발(R&D)에 몰두한 끝에 혁신상 5관왕을 수상하며 기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2019년 착수한 양이온 리포솜 기술 개발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양이온 리포솜을 만드는 데 주로 썼던 의약품용 지질은 화장품에 쓰기엔 고가였다. 김 책임연구원은 “양이온성을 부여하기 위해 수십 가지 후보 물질을 검토해 겨우 키토산을 찾았는데, 제일 잘 알려진 꽃게 키토산은 기피하는 나라가 많아 후보 물질서 탈락했다”고 설명했다. 대체할 식물 유래 성분을 수없이 스크리닝한 결과 최종 낙점된 것은 버섯이었다. 버섯 유래 키토산 성분을 사용하면서 채식주의자도 쓸 수 있는, 전 세계에 수출이 가능한 화장품 개발이 가능해졌다. 연구성과는 고분자·재료과학 학술지(maromolecular bioscience)를 비롯한 저명한 국제 저널에 게재됐다.

지난 11일 열린 국무총리표창 수여식은 초보 엄마인 김 책임연구원의 첫 단독 외출이었다. 올해 엄마 뱃속에서 시상대에 여러 번 오른 아이는 이제 생후 80일을 맞았다. 김 연구원은 “직업이 이렇다 보니 아이 로션을 고를 때도 유해성분이 들었는지 더 꼼꼼히 따지게 된다”고 말하며 웃었다. 가족과 지인 사이에서도 그는 ‘화장품 GPT’로 통한다. 화장품 성분이 표기된 뒷면을 그에게 찍어보내면 ‘XX 성분이 들어간 폼클렌저를 써라’ ‘○○ 기술이 적용된 제품은 흡수력이 좋다”같이 고객 맞춤형 추천을 해준다.

성인 여성 전유물이던 화장품은 이제 성별과 연령에 국한되지 않는 전 연령대 필수품이 됐다. 김 책임연구원은 “화장품은 피부 연구에 기반해 사람 특성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분야”라며 “연구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제 10년 차 연구원이 된 그는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재밌고 좋다”면서 “육아휴직 후 복직하면 다른 전달체를 개발해보려 한다”며 의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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