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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목)

바퀴 못 편 채 활주로 중간에 착륙… 시속 200㎞로 외벽에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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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공항 참사]

조선일보

그래픽=양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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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항공기는 29일 오전 8시 50분쯤 전남 무안국제공항 인근 상공에 들어왔다. 이 비행기는 이날 오전 2시 11분(현지 시각)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오전 8시 30분(한국 시각) 무안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지연 운항하는 상황이었다. 여객기에는 승객 175명과 승무원 6명 등 총 181명이 타고 있었다.

당시 무안공항의 날씨는 지상 10㎞ 상공에 구름이 조금 끼어 있었을 뿐 쾌청했다. 비도 오지 않았다. 기상청에 따르면, 당시 무안공항에는 남동풍이 초속 0.7m로 불고 있었다. 기상청 관계자는 “사실상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수준”이라고 했다. 무안공항 측은 “시정 거리가 약 9㎞로 시야도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무안공항 관제탑은 이날 오전 8시 54분 사고 항공기에 착륙 허가를 내렸다. 이어 오전 8시 57분쯤 기장에게 “새 떼와 충돌에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당시 무안공항 일대에 겨울 철새가 많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2분쯤 뒤 기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갑자기 구조 신호인 ‘메이데이’를 외쳤다. 5시간가량 평화롭게 운항하던 항공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새 떼와 충돌해 항공기 조종에 갑자기 어려움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여객기는 당시 무안공항 남쪽에서 활주로로 접근 중이었는데 지상 약 200m 상공에서 새 떼와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목격자들도 새가 엔진으로 빨려 들어간 듯 2∼3차례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오른쪽 엔진에서 불길이 일었다고 전했다.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항공기 오른쪽 엔진에 철새로 추정되는 물체가 빨려 들어가 터지는 장면이 나온다. 사고 여객기에 타고 있던 승객 A씨는 이날 오전 9시 가족들에게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 못 하는 중’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새 떼가 항공기 엔진 등으로 들어가 충돌하는 현상을 ‘버드 스트라이크’라고 부른다. 무안공항 주변에는 논과 습지가 많아 철새가 자주 찾는다고 한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전국 지방공항 가운데 무안공항이 버드 스트라이크가 발생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당시 기장은 착륙을 포기하고 기수를 들어 올려 공항 상공을 선회했다. 관제탑과 기장은 활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다시 착륙을 시도하기로 했다고 한다. 무안공항은 길이 2.8㎞ 활주로가 남북으로 1개 놓여 있는데 남쪽에서 접근하던 항공기가 방향을 바꿔 북쪽에서 착륙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항공기는 크게 선회할 만큼 높이 날아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항공 전문가들은 “큰 원을 그리며 돌아야 활주로 북쪽 끝부터 내려앉을 수 있는데 항공기가 충분히 상승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날 무안공항 인근 바닷가에서 낚시하던 정모(50)씨는 “여객기가 (높게 상승하지 못하고) 저공비행으로 선회해 다시 착륙을 시도하다 사고가 났다”며 “비행기가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착륙해 큰 일이 생겼구나 싶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착륙 시도 중 랜딩기어(착륙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 바퀴가 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기장은 항공기 몸통을 이용해 미끄러지듯 착륙하는 ‘동체 착륙’을 시도했다. 이와 관련해 항공업계에선 “엔진이 고장 나면서 전자장치와 유압계가 함께 고장 났고 랜딩기어에도 이상이 생겼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바퀴 못 편 채 활주로 중간에 착륙… 시속 200㎞로 외벽에 충돌

기장이 상공에서 ‘메이데이’를 외친 직후 무안공항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공항 소방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 대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형 참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공항 관계자는 “당시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고 비행기 기장은 비행 경력이 6823시간으로 경험이 충분하다”며 “당시 긴박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고 영상을 보면 활주로에 접근하던 사고 여객기는 착륙 전 오른쪽 엔진에서 폭발과 함께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아 바퀴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사고 원인은 수거한 비행기록장치를 조사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했다.

‘메이데이’를 외치며 1차 착륙에 실패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다시 무안공항 상공에 들어선 것은 29일 오전 9시쯤이다. 활주로 북쪽에서 진입해 고도를 낮췄지만 이번엔 랜딩 기어(착륙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바퀴가 내려오지 않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기체 몸통으로 착륙하는 ‘동체착륙’을 시도했다. 동체착륙은 최악의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착륙 방법이다.

하지만 1차 착륙 실패 후 공항 상공을 선회할 때 크게 원을 그리면서 선회하지 못한 탓에 2차 착륙 때는 활주로 중간 지점에서 급하게 ‘터치다운(착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항 인근에서 횟집을 하는 이모(47)씨는 “비행기가 활주로 북단 끝부분이 아니라 중간쯤에 착륙했다”고 했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항공기 이상 등으로 기장이 다급하게 활주로에 내려앉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길이 2800m의 짧은 활주로가 사고 원인 중 하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국내선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 활주로”라고 했다. 무안 국제공항은 다른 지방의 국제공항인 청주공항(2744m)과 대구공항(2775m)보다는 활주로가 긴 편이다.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해당 항공기는 900m 거리에도 멈춰설 수 있다”며 “항공기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활주로 중간 지점에 내려앉은 항공기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빙판길의 썰매처럼 계속 미끄러지는 모습이었다. 바닥에 몸통이 닿자 시커먼 연기가 솟구쳤다.

목격자들은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속도가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고현일 한국공항공사 항행장비센터장은 “(사고 항공기는) 동체착륙 당시 속도 제어가 되지 않은 듯했다”고 말했다.

몸통으로 비상착륙한 항공기는 불과 10여 초 만에 활주로를 300m쯤 벗어나 높이 3~4m 콘크리트 외벽과 충돌했다. 충돌 직후 외벽은 무너졌고, 항공기는 ‘펑’ 하는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두 동강 난 기체에서는 상공 40~50m까지 큰 화염이 치솟았다. 공항 인근에 사는 주민 이모(47)씨는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 같았다”며 “집 창문과 식기가 우수수 흔들렸다”고 말했다. 목격자 이모(49)씨는 “사고 현장에서 200~300m 떨어져 있었는데도 마치 사우나 문을 연 것처럼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화염에 휩싸인 기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불탔다. 비행기의 형체가 남은 것은 그을린 꼬리 부분 15m가량뿐이었다. 일부 파편은 공항 밖으로까지 흩어졌다. 소방 관계자는 “동체 일부는 콘크리트 외벽을 뚫고 나갔다”고 말했다. 사고 여객기가 충돌할 당시 속도는 시속 200㎞ 안팎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상당수 승객이 기체 밖으로 튕겨 나오기도 했다. 사고 현장에서 40~50m 떨어진 지점에서도 발견됐다. 이날 수색 작업에 투입됐던 한 소방관은 “기체가 멈춘 지점 100~200m 주변까지 튕겨나간 시신도 많았다”고 했다.

소방 당국은 이날 오전 9시 16분쯤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진화 작업에 나서 9시 46분쯤 초기 진화를 마쳤다. 중앙119구조본, 전북소방항공대 등에서 수색을 위해 소방 헬기도 출동했다. 소방청 등 구조 당국은 이날 오후 9시 7분 기준 수색 11시간 만에 사망자 179명을 모두 수습했다. 구조대원들은 이날 일몰 이후에도 헤드 랜턴을 착용하고,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사고 기체 꼬리날개 밑부분에 진입하는 등 사고 현장 주위를 오가며 수색 작업을 이어갔다. 앞서 구조 당국은 인력 1572명, 장비 228대를 동원해 구조와 수습, 수색 작업을 벌였다.

소방은 형체가 남은 기체 꼬리 부분에서 승무원 2명을 구조했다. 하지만 더는 생존자는 나오지 않았다. 이정현 무안소방서장은 “삽시간에 폭발해 승객들이 대피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생존자 2명은 여객기 뒤쪽 객실에서 일했으며 충돌 과정에서 기체 꼬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생명을 건졌다고 한다.

전남도는 목포대학교 기숙사에 여객기 사고 유가족들의 임시 숙소를 마련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탑승자 181명 중 76명(41%)이 광주·전남 지역 거주민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버드 스트라이크, 메이데이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 운항 중인 항공기에 새가 충돌해 발생하는 항공 사고. 이착륙 중 주로 발생한다. 무게가 1㎏ 미만 새가 부딪히면 항공기는 5t가량의 충격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류 충돌 중 가장 위험한 경우는 새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우로, 엔진 고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메이데이(mayday): 항공기·선박·우주 비행체에 대한 국제 조난 긴급 신호다. 프랑스어로 ‘와서 나를 도와주시오’란 말인 브네 메데(venez m’aider)의 뒷부분 ‘m’aider’가 영어식으로 바뀐 것이다. 항공기 운항 중 ‘메이데이’를 외치고, 이를 관제 당국이 수신하면 관제 당국은 해당 항공기가 다른 항공기에 앞서 조치될 수 있도록 착륙 순서 등에서 우선권을 부여한다.

☞랜딩기어, 동체 착륙

랜딩기어(landing gear): 비행기 아랫부분에 달린 바퀴 등 착륙 장치를 말한다. 이륙이나 착륙, 지상 이동을 할 때 활용하는데, 활주로와 직접 닿아 비행기를 지탱하는 것은 물론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도 한다. 비행 중에는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 내부로 접어 넣었다가, 착륙 시 다시 펼쳐 사용한다.

동체 착륙: 비상착륙의 일종. 항공기의 랜딩 기어가 손상되거나 정상적으로 내려오지 않는 경우 기체가 지면에 직접 닿으면서 착륙하는 것을 뜻한다. 마찰열로 인한 화재나 폭발이 발생할 수 있어 착륙 전 연료를 최대한 비워야 하고, 기체를 최대한 수평으로 유지한 채 속도를 줄여 활주로에 닿도록 하는 등 고난도 조종 기술이 필요하다.

[오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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