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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 (수)

후퇴하는 용기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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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초저출생, 초고령화, 초인구절벽으로 정의되는 한국의 인구 문제는 사회 전반의 근본적 패러다임을 바꾸는 노력 없이는 어떤 긍정적인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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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12월을 한권의 책과 함께 시작했다. 우치다 타츠루가 엮은 ‘한 걸음 뒤의 세상’이다. 부제인 ‘후퇴에서 찾은 생존법’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가서 집어 들었다. 책은 ‘후퇴학’을 주창하는 우치다 타츠루에 공감하는 여러 분야 전문가가 함께 쓴 글을 모았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고도 성장기를 지나온 조국의 장래가 그리 밝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 국가의 존망과 그 속에서 국민으로서 나의 안위가 위협받는 계엄 시국을 맞닥뜨리게 될 줄은 몰랐다.



엄중한 시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공감하고 동의했다. ‘후퇴’를 “국력이 쇠퇴하는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일”로 정의하고, 이를 주제로 엮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가 직면할 여러 과제, 예를 들어 “소자화(아이를 적게 낳는 현상), 고령화, 환경 문제 등을 앞서 겪었기에 해결책 마련에도 선두에 설 수밖에 없었던 과제 선진국”이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국력이 쇠하고 있는 나라의 일원으로서 여러 학자의 고민과 제언에서 여러 힌트를 발견했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을 두고 외신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 탄력성에 주목한다. 하지만 밤새워 놀고 일해도 쌩쌩하던 성장기를 지나 중년에 접어들었고 필연적으로 국가의 체력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고 느낀다면 비관적 회의주의자의 지나친 기우일까? 크게는 문명, 작게는 개별 국가의 흥망성쇠는 당연한 일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지난 40여년 대한민국은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큰 틀에서 우상향 성장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래프의 가파름이 둔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방향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문제를 더욱 냉정하게 직시할 수 있다.



문제를 정의하는 것부터 입장이 다르면, 결론은 물론 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전략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저출생, 지방소멸, 기후위기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협이자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이는 당연히 국력 저하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극복’과 ‘적응’ 중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적응’,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후퇴’의 입장에 마음이 간다. 인구가 3만명이 안 되고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 중 34.5%를 차지하는 지방소멸의 현장에서 쇠퇴하는 도시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인 도시재생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를 ‘잘 소멸하는 것’에 두고 방법을 고민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걸음 뒤의 세상’에서 정치사상가 훗타 신고로는 “지속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부터 후퇴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며 “후퇴는 지성의 증거”라고 말한다.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후퇴’를 옹호하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오늘보다 내일 더 부유해야 한다는 성장주의를 금과옥조처럼 소중히 여겨 온 우리 사회가 후퇴를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후퇴의 태도가 필요한 대표적인 사안인 인구 감소는 한국 사회의 ‘정해진 미래’이다. 초저출생, 초고령화, 초인구절벽으로 정의되는 우리의 인구 문제는 사회 전반의 근본적 패러다임을 바꾸는 노력 없이는 어떤 긍정적인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작아지고 약해지는 한국을 인정하고 제도적 후퇴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후퇴를 패배와 같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적극적인 현실 대응으로 인식하는 시선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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