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기후소송 두번째 공개 변론이 열린 지난 5월21일 오후 서울 계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구인 진술자 3인 중 한명인 한제아 ‘아기 기후소송’ 청구인이 최후 진술문과 함께 ‘반드시 행복은 오고야 만다’는 꽃말의 마리골드 종이꽃을 손에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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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로 |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민주주의는 갈팡질팡한다. 이를테면 미국.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4년마다 민주적인 선거로 지도자를 결정하며 국민 모두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 어찌나 자유로운지 8년 전엔 ‘기후변화는 미국 제조업을 망가뜨리려는 중국의 농간’이라는 창발적 발언을 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서 북한과 아프가니스탄도 참여하는 국제 기후협약에서 빠지고, 더 많은 석유·가스를 퍼 올리려 애썼다. 그러더니 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에너지·기후 분야에 역사상 가장 큰돈을 쏟아부었고, 전임자가 탈퇴한 기후협약에 재가입했다. 그리고 향후 4년은 과거 4년을 지우는데 할애될 것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어떤가. 중국은 알다시피 일당 독재 권위주의 국가다. 2012년 집권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걷고 있고, 언론은 늘 정부와 한목소리를 낸다. 어찌나 일사불란한지 태양광 패널, 배터리 등 정부가 중점 산업으로 지목하는 족족 ‘까라면 까’ 자세로 내수 시장에서 판을 깔고 세계 시장을 평정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놀라운 속도로 태양광과 전기차를 보급하고 있으며, 전 세계 에너지전환이 속도를 내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중국이 저렴한 가격에 패널과 배터리를 풀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과연 민주주의에 기후대응을 맡겨도 되는지 의심이 든다. ‘가이아 이론’으로 유명한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이런 견지에서 “민주주의를 당분간 보류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과감한 의견을 펴기도 했으며, 독일 철학자 한스 요나스도 1970년대 생태 위기를 보며 현세대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최근 한달간, 좀 더 길게는 지난 15년간 우리의 기후 정책을 보면, 이런 주장이 더욱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은 윤석열 정부로 넘어오면서 흔적 기관처럼 퇴화하고 말았다. 윤 정부의 원전 르네상스 구상이 담긴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확정이 불투명해졌고,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내용보다 당장 내년 2월로 다가온 제출 마감 준수 여부가 더 관심사다. 제4차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법에 따라 연내 기본계획을 확정해야 하는데 사실상 물 건너간 데다 이를 심의할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 10월로 임기를 마친 민간위원들이 새 위원이 위촉되지 않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자 엉망진창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기후위기 앞에서 무력한 체제일까.
섬뜩하고 기괴한 12·3 내란사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 헌법 1조가 얼마나 숭고한 문장인지 다시금 일깨워 준다. 70년간 쌓아 올린 민주주의 공든 탑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내 손에 있고, 모든 권력은 나에게서 나온다’고 믿는 광인과 그 무리의 칼춤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 그 광기를 꺾을 수 있는 건 역시나 진정한 주권자인 국민이라는 걸 우리 모두 확인했다. 민주주의를 사무치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갈팡질팡하다 잘못된 길에 접어들어도 수정할 기회가 있다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가 가진 힘이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기후대응은 지도부의 간택에 달린 복불복 문제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선 국민이 요구하고, 감시하며 이탈된 경로를 재조정할 수 있다. 이번 정부에서 망했어도 다음 정부에서 만회할 기회가 있다. 그러니 잊지 말자. 이번 사태로 얼마나 많은 정책이 밀렸는지, 지난 2년 반 원전에만 매달리는 사이 세상은 얼마나 빠르게 에너지 전환을 향해 달려갔는지, 무려 지구의 안위를 걱정하며 국회에 입성해놓고는 일신의 안위를 위해 비겁한 선택을 한 자가 누구였는지.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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