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일본 신오사카역 에끼벤 판매점의 모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신칸센을 타면서 야마가타현의 ‘소고기 도만나카’ 도시락 먹는 걸 좋아합니다. 소금, 된장, 카레, 모둠 등 종류도 다양해서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설레는 느낌까지 듭니다.”
동일본여객철도(JR동일본)가 해마다 여는 ‘벤또 아지노진’(도시락 맛의 진영) 대회에서 ‘대장군’을 차지한 기차역 도시락(에끼벤) ‘소고기 도만나카’에 대한 고객의 평가입니다. 이 도시락은 야마가타현산 쌀 ‘도만나카’로 밥을 맛있게 지은 뒤, 그 위에 간장과 특제 소금으로 맛을 낸 소고기 조림을 가득 얹은 덮밥 스타일 도시락입니다. 도쿄역, 우에노역, 후쿠시마역, 야마가타역, 모리오카역 등 전국 곳곳 기차역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기차로 여행한다면 놓쳐서는 안 될 재미 가운데 하나가 ‘에끼벤’입니다. 철도의 나라 일본의 기차역(에끼)에서 파는 도시락(벤또)은 정갈하고 간편할 뿐 아니라 뛰어난 맛과 품질로 유명합니다. 에끼벤에 쓰이는 재료들은 기차 이동 중에 간단히 즐기는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것들이 많은데요, 소고기·돼지고기 덮밥이나 튀김류 같은 것은 기본이고 붕장어구이, 성게알 덮밥, 전복·꽃게 모둠, 회, 초밥같은 것들로 화려하게 꾸민 도시락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일부 특별하게 만드는 에끼벤 가운데는 6단 밀푀유 에끼벤, 새우와 연어알을 채운 5단 덮밥, 일본산 최고급 소고기(와규)로 만든 스테이크 도시락들도 있습니다.
일본 도쿄역에서 산 에끼벤 ‘니혼바시 마쿠노우치’의 구성.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에끼벤의 역사는 140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에끼벤 탄생에 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메이지유신이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던 1885년 처음 에끼벤이 등장했다는 게 그중에서 신뢰도가 높습니다. 당시 일본 도치기현 한 여관이 매실을 넣은 주먹밥을 대나무 껍질로 싸서 인근 우쓰노미야역에서 5전에 팔았다는 겁니다. 당시에도 귀했던 장어덮밥이 10전이었다고 하니, 참신한 아이디어로 만든 ‘신상품 개발비'를 꽤 많이 쳤던 것 같습니다. 불과 4년 뒤에 요즘 도시락을 일컫는 ‘마쿠노우치 벤또’ 형태의 도시락이 나타났습니다. 마쿠노우치는 연극 등을 보다가 막간에 먹던 도시락을 일컫는데요. 일본 고베 히메지역에서 뚜껑을 덮은 도시락에 어묵, 생선 같은 게 담은 도시락이 나타나면서 그 형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다양한 에끼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후 일본의 철도 발달과 함께 각 지역마다 특색있는 식재료를 넣은 에키벤들이 경쟁하듯 발달하면서 여행자들을 행복하게 하는 ‘한 끼’로 성장했습니다. 일본 누리집 ‘에끼벤 자료실’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에끼벤 7천여종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에끼벤만 해도 무려 35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에끼벤 가격은 싼 것은 800엔 정도부터 1500엔 사이가 보통인 것 같습니다. 다만 특별한 식재료를 쓴 것들은 2천엔을 훌쩍 넘어가기도 하는 만큼 그리 만만한 가격은 아닙니다. 실제 26일 고베 출장길에 산 ‘니혼바시 마쿠노우치' 에끼벤이 1450엔(1만3500원), 곁들여 마실 커피까지 사니 1600엔을 훌쩍 넘었습니다.
에끼벤은 맛과 품질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꼭 기차 여행객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인기가 높습니다. 1964년 이후 60년 역사를 자랑하며 해마다 1월 도쿄 게이오백화점 신주쿠점이 개최하는 ‘원조 유명역 벤또와 전국 맛있는 음식 대회’를 보면,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요. 백화점 쪽에 따르면, 보름 정도에 걸친 행사 기간에 에끼벤이 30만~40만개 가량 팔립니다. 이 백화점에 하루 방문객 수가 평일 5만~6만명(휴일 7만~8만명) 정도인데 이 대회 기간에만 손님이 20~30% 증가합니다. 행사 기간 쓰이는 쌀이 80톤, 대회 관리에 필요한 인원이 하루 1천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2010년 대회때는 하루 7억1천만엔(66억원) 매출을 기록했고, 2004년에는 하루 최대 12만명이 몰렸습니다.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소라벤’을 사기 위해 줄서있는 사람들. |
아쉽게도 기차 대신 비행기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은 에끼벤을 먹을 수 없는데요, 공항을 이용하는 이들을 위한 도시락도 마련돼 있습니다. 일본 공항에는 ‘하늘’과 ‘도시락’이란 뜻의 일본어 앞글자를 딴 ‘소라벤’(空弁)이란 게 있습니다. 다만 소라벤의 맛은 글쎄요, 제 입맛에는 에끼벤과는 견줘서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기회가 닿으면 소라벤이든, 에끼벤이든 일본에서의 또다른 추억이 될 ‘도시락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도쿄/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