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학유와 동시대를 산 김형수(金逈洙)에게도 새봄은 곧 봄나물이었다. 김형수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 속 정월과 2월은 이렇다.
“무움·움파·미나리섞박지(菁筍筍蔥雜芹葅)/ 그 신선함은 오신채 못잖네(嘗新不必羨五辛)” “산나물 아직 이른 때지만(此時山菜雖是早)/ 들녘 나물은 먹을 수 있지(猶有埜蔌亦可茹)/ 물쑥·소루쟁이·씀바귀·냉이(蔞蒿羊蹄曲麻薺)/ 시원하게 비위를 깨우네(恬淡俱醒脾胃歟)”
한국인의 일상과 밥상에서 봄은 예나 제나 봄나물이다. 예전엔 겨우내 움 속에 움츠리고 있다 움튼 움파나 저장한 무에서 움튼 무움 또한 봄나물로 여겼다. 오신채도 지나칠 수 없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오신채란 대개 파·마늘·달래·무릇·부추 등 다섯 푸성귀를 말한다. 출가한 사람은 오신채가 성욕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꺼리지만, 성욕이란 한편으론 생명력 아닌가. 독특한 향과 적절한 자극성이 있는 새봄의 순과 나물은 사람의 활력을 북돋게 마련이다. 향기로운 냉이와 쑥도 잊을 수 없다. 조선 후기 문인들은 새봄의 맛으로 쑥국을 꼽곤 했다. 20세기에도 여기 잇닿은 감각이 이어졌다. 방신영(1890~1977)은 <조선요리제법>(1921)의 한 꼭지인 ‘국 끓이는 법’에서 겨울과 봄 사이 나물국으로 냉잇국을 맨 앞에 뒀다. 이어 소루쟁잇국, 애탕(쑥국)을 설명했다. 냉잇국은 된장과 고추장을 함께 풀어 수더분하게 끓였다. 애탕은 맑은장국에 고기완자와 잘 손질한 쑥을 더해 운치 있게 끓였다. 이윽고 봄이 더 깊어지면 두릅이 온다. 19세기에 쓰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선 가장 간단한 형태의 두릅장아찌 및 두릅나물과 함께 두릅회가 등장한다. 두릅회는 “살진 두릅을 삶아 건져 껍질을 벗기고 아래위를 잘라 한 치 길이씩 잘라 그릇에 담는다. 윤즙(초고추장)에 먹”으라고 했다. 이렇게 면면한 미각과 조리법과 일상이라니. 봄은 일상의 감각과 함께 한국인을 찾아왔다. 새봄은 일상의 감각을 쥐고, 일상을 일상답게 살아내고 있을 때 기다릴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그럴 테다. 이 겨울, 나는 여느 때처럼 내 일로 음식문헌을 편다. 그러고는 일상에 묻어 오늘날에 이른 한국인의 연대기를 들여다본다. 아울러 새봄을 떠올린다. 새봄을 기다린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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