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규 원자력연구원장 |
지난주 태양전지와 이차전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한 대학의 교수진 앞에서 원자력의 효익과 SMR(소형모듈원자로) 개발전망에 대한 강의를 했다. 첨단 태양전지인 페로브스카이트의 대가가 속한 이 교수진이 원자력에 관심을 보이며 필자를 부른 것도 뜻밖이었지만 강의 후 이어진 토론에서 연구자끼리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동일한 속성을 공유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 토론의 결론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적절히 포함하는 합리적 에너지믹스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태양광 발전단가는 킬로와트시(㎾h)당 208원으로 추정된다. 추정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전력시장에서 결정된 태양광 정산단가는 정확한 수치가 있지만 재생에너지 보조금 단가는 재생에너지별로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전이 매년 발행하는 한국전력통계에서 RPS 이행비용으로 표시된 재생에너지 보조금은 2023년의 경우 2조9375억원이었다. 이를 재생에너지 의무공급량과 이행비율로 계산한 재생에너지 총공급량 604억㎾h로 나누면 보조금 단가가 49원으로 산정된다. 208원은 지난해 태양광 정산단가 159원에 이 재생에너지 보조금 단가를 더한 값이다.
이런 방식으로 산정한 태양광 발전단가는 2020년 최저인 139원, 2022년 최고인 258원을 기록했다. 태양광 발전단가가 이렇게 크게 변하는 이유는 전력시장에서 계통한계가격(SMP)으로 결정되는 태양광 정산단가가 LNG 발전단가에 크나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2022년 에너지가격 상승이 LNG 발전단가 상승을 초래했고 이에 따라 태양광 정산단가도 덩달아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투자비와 운영비, 금융비용을 고려한 신규 태양광 설비의 균등화 발전원가는 이렇게 높지 않다. 2023년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규 태양광 설비의 균등화 발전원가는 97원 정도다. 이 원가는 2010년과 비교하면 85%나 하락했다. 그동안의 급속한 태양광 기술발전과 생산 및 건설 효율화에 따라 태양광 발전원가가 이렇게 대폭 하락했지만 아직도 55원선인 원자력 발전단가보다는 비싸다. 물론 페로브스카이트 같은 혁신 태양전지를 바탕으로 한 이중구조의 고효율 탠덤 태양전지가 실용화되면 태양광 발전원가는 더욱 낮아질 수 있겠으나 태양광 발전원가에는 꼭 추가돼야 할 중요한 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ESS(에너지저장장치) 운용비용이다.
태양광 발전비중이 높아질수록 간헐성과 변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용량 ESS 비용이 대폭 늘어난다. 현재 수준의 태양광 발전설비와 ESS 설비의 소요비용에 적정 수익과 세금 등을 고려해 태양광 발전단가를 산정한 한 계산에선 태양광 설비만 운용할 때는 120원 정도인 단가가 낮시간에 발전한 전력량의 반 정도만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의 ESS를 추가하면 260원 정도로 나온다. 발전비용 자체보다 저장비용이 더 많게 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것이다. 일기불순을 고려하기 위해 ESS 용량을 2배로 할 경우 420원으로 대폭 늘어난다. 미래 태양광 설비는 항상 충분한 용량의 ESS와 쌍으로 운용돼야 하기에 RE100, 즉 재생에너지 100%는 경제성 관점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형 원전은 발전단가가 꽤 낮지만 부지요건 제약상 대형 원전을 대거 건설할 수는 없다. 2030년대 중반 이후 원자력 확대는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돼 수요지 인근에 건설할 수 있는 SMR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SMR의 발전단가는 대형 원전보다 비싸겠지만 ESS가 결합된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보다는 쌀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탄소중립과 AI 시대에 증대될 안정적인 청정전력 수요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 나눠 감당해야 한다. 합리적인 장기 에너지믹스 정책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에너지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수립되기를 고대한다.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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