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세대교체’ 바람
1970·80년대생 오너 경영인 두각
1970·80년대생 오너 경영인 두각
재계를 이끄는 핵심 경영진 연령대가 바뀌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에 이어 현대차그룹 도약을 이끌어온 1970년생 정의선 회장은 3년 연속 올해의 CEO 1위 자리에 올랐다. 10위권으로 시야를 넓혀도 세대교체 바람이 읽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장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1983년생)은 6위를 기록했고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장남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1982년생)도 9위에 오르는 등 1970~1980년대 젊은 경영인이 올해의 CEO 자리를 줄줄이 꿰차는 모양새다.
2024년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수출 둔화·내수 침체에 정치적 리스크까지 겹쳤다. 외부적으로는 미국 트럼프 2기를 마주했다. 2차전지와 반도체, 석유화학 등 한국 경제 주력 산업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새 엔진이 된 건 방산, 조선업이다. 이를 이끄는 수장은 1970·1980년대생 오너 경영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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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엔진’ 중심엔 젊은 오너
김동관·정기선·구본상 눈길
방산 부문 대표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LIG넥스원 수장이 나란히 50위 순위권에 진입했다.
2024년 경영 일선에 복귀해 LIG넥스원을 이끄는 구본상 LIG 회장(19위, 1970년생)은 LIG넥스원 해외 사업을 주도하며 매출을 빠르게 늘렸다. LIG넥스원의 올 3분기 누적 매출은 2조108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4% 증가했다.
LIG넥스원은 ‘비궁’을 중심으로 美 방산 시장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해상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최첨단 유도로켓 ‘비궁’은 차량, 함정은 물론 무인 수상정을 비롯한 다양한 장비에 탑재 가능해 전 세계적으로 높은 관심을 받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이끄는 김동관 부회장(6위)도 2024년 두드러진 성과를 내며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2024년 3분기 누적 매출은 6조4151억원에 달한다. 2022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3.8% 증가했다. 연말 인사에서 승진한 정기선 수석부회장(9위)도 10위권에 들었다. 조선업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 수주잔고가 77조원을 기록, 수주 증가세를 이끌었다.
유통·IT 부문도 7080이 대세
정지선·최수연·김창한·성래은
‘젊은 층의 감각’을 노려야 하는 유통과 IT 부문에서도 1970·1980년대생 CEO 활약이 돋보였다.
‘노스페이스’ ‘룰루레몬’ 등 브랜드 의류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형태로 생산해 국내 패션 산업을 이끄는 영원무역그룹 성래은 부회장(47위, 1978년생)은 올해의 CEO에 신규 진입했다. 성기학 영원무역그룹 회장 딸인 그는 패션업 불황에도 꾸준한 실적을 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에서 추산한 2024년 영원무역 실적 컨센서스는 매출 3조3979억원, 영업이익 4085억원이다.
1972년생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14위)은 순위를 단기간에 끌어올렸다. 2023년 35위를 기록한 정 회장은 2024년 14위까지 도약했다.
현대백화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점포 여의도 ‘더현대 서울’을 중심으로 실적을 끌어올린 덕분이다. 더현대 서울은 2024년 상반기 국내 70개 백화점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점포다.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2% 증가한 6016억원으로 집계됐다. 백화점 전체 평균 성장률(2.1%)을 훌쩍 웃돈다.
‘배틀그라운드’ 운영 게임사 크래프톤의 김창한 대표(25위, 1974년생)와 최수연 네이버 사장(22위, 1981년생)도 CEO로 눈에 띈다. 두 CEO 모두 역대급 실적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크래프톤은 2024년 3분기 누적 매출 2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연간 매출(1조9105억원)을 3분기 만에 넘어선 것이다. 네이버도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3분기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조8520억원, 1조4372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0%, 32.6% 증가했다.
비록 이번 순위에 들지는 못했지만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장남 윤상현 한국콜마홀딩스 부회장도 머지않아 올해의 CEO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혁신 1위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HBM 1등 리더십…엔비디아 ‘찐 파트너’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올해의 CEO’ 혁신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워 인공지능(AI) 패러다임에 제대로 올라탔다는 평가다.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들의 HBM 수요를 일찌감치 예상하고 준비해온 결과다. 현재는 사실상 엔비디아에 HBM을 독점 공급 중이다.HBM 1등 리더십…엔비디아 ‘찐 파트너’
특히 HBM 2라운드도 SK하이닉스가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HBM은 적층 난도에 따라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5세대(HBM3E) 순으로 개발됐다. 반도체 업계는 4세대까지를 HBM 1라운드로 본다. 2라운드는 HBM3E(8단·12단 등)부터 6세대 HBM4 이후를 아우른다. 일각에선 2라운드를 기점으로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존재감이 커질 것으로 봤다. 하지만 현재 평가는 여전한 SK하이닉스 우위다. SK하이닉스는 지난 9월 HBM3E 12단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양산한다고 밝혔다. HBM3E 12단은 3GB D램 칩 12개를 수직 적층해 기존 8개를 적층한 HBM3E 8단(24GB)보다 용량이 50% 개선됐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상반기 중 HBM3E 16단 제품도 공급할 계획이다. 6세대인 HBM4 12단 제품도 2025년 하반기 중 출시할 계획이다. 곽 사장은 최근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임직원 대상으로 진행된 ‘함께하는 더(THE) 소통행사’에서 “HBM 대량 양산 체계와 압도적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했다”고 2024년 성과를 자평했다.
사회적 책임 2위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협력사 ESG 펀드 만들고 ‘상생’ 시동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의 CEO’ 사회적 책임 분야 2위를 차지했다.협력사 ESG 펀드 만들고 ‘상생’ 시동
한 부회장은 올해 내내 협력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상생 없이는 한국 경제에 드리운 불확실성과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 부회장의 ‘협력사 상생’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지난 9월에는 총 1조원 규모 ‘협력 회사 ESG 펀드’ 조성에 나섰다. ESG 관련 글로벌 규제가 커지고 있지만, 대응 체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중견 협력사를 돕겠다는 의지다.
ESG 펀드는 향후 6년간 협력사의 ESG 경영 기반 구축을 위한 자금으로 활용된다. 협력사가 사업장 환경 안전 개선, 에너지 사용 저감 등 ESG 투자 계획을 수립해 대출을 신청하면 삼성전자와 시중은행은 자금 목적이 ESG 목적에 적합한지 심사에 들어간다.
결과에 따라 업체당 최대 20억원 한도 내에서 필요 자금을 최장 3년간 무이자로 대출받을 수 있다.
최초 대출 이후 1년 단위로 최대 2회까지 연장 신청도 가능하다.
한 부회장은 “불확실한 경영 환경으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공급망 전체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 협력 회사들이 ESG 경영에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삼성전자는 협력사가 ESG 경영 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자금, 인력 양성, 기술 등 다양한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0호 (2024.12.25~2024.12.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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