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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내 점수는 아직 70점, 남은 30점 채우려 또 쏜다”…올림픽 최다 金 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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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 3관왕·양궁의 神 김우진…“전성기는 아직 안왔다”


매일경제

김우진이 최근 충북 청주 김수녕양궁장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한 뒤 과녁 앞에서 활 시위를 당기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주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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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올림픽 통산 최다 금메달(5개), 월드컵 파이널 최다 우승 공동 1위(5회), 세계 랭킹 1위. 이 모든 것을 2024년 한해에 다 이룬 선수가 있다. 스스로 ‘양궁 GOAT(Greatest of all times·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리고 싶은 사나이, 양궁 국가대표 김우진(32·청주시청)이다.

2024년 한여름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웠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3회 하계올림픽 양궁에서 남자 개인·단체·혼성전을 모두 석권해 대회 3관왕을 달성했다. 김우진을 앞세운 한국 양궁은 올림픽 5개 전 종목을 석권, 나폴레옹이 잠든 파리 앵발리드의 양궁장에 애국가를 5차례나 울렸다. 앞서 2016년 리우올림픽,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남자 단체전만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는 올림픽 통산 5개 금메달을 획득, 동·하계올림픽 한국 선수단 전체를 통틀어 통산 최다 금메달 기록을 세웠다.

파리올림픽 후에도 김우진은 식지 않았다. 지난 10월 멕시코 트락스칼라에서 열린 2024 현대 양궁 월드컵 파이널 남자 개인전에서 이 대회 통산 5번째 정상에 올랐다. 이 대회 우승으로 2022년 12월 이후 1년 10개월 만에 남자 양궁 세계 1위에 복귀했다. 지난달 2일 열린 2025 양궁 리커브 국가대표 남자부 2차 선발전에서도 전체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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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현대 양궁 월드컵 파이널 우승 후 트로피를 들고 있는 김우진의 모습. 대한양궁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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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은 공정을 강조하는 경쟁 시스템이 정착된 한국 양궁이 낳은 스타다. 각종 대회에서 많은 메달과 성취를 이뤘지만 여전히 배고프다. 연말에도 훈련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 많은 성과를 낸 올 한해를 정리하는 인터뷰를 요청하자 자신이 훈련하고 있는 충북 청주 김수녕양궁장으로 초대했다.

김우진은 “한번 내려가면 다시 확 올라가기가 힘들다. 정상 컨디션을 되찾아 내년에도 최고 자리를 지키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면서 “내 양궁의 전성기는 아직 안 왔다. 이제 다시 시작”이라며 힘차게 활시위를 당겼다.

―올림픽을 치른 한 해가 마무리되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파리올림픽에서 정말 좋은 성적이 나왔다.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보내준 덕분에 올림픽 직후에 바쁘게 보냈다. 그렇다고 난 연예인이 아니다. 운동선수로서 내가 열심히 하고, 또다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국민들에게 다시 기쁨을 드리는 게 내 역할이다. 지나간 시간은 과거이고 역사일 뿐이다.

―많은 것을 이루고서 맞이하는 연말은 어떤 기분인가.

▷어떤 사람이든 각자 직종에서 본인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를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스포츠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게 가장 큰 목표다. 당연히 뿌듯하고, 그에 따른 성취감도 크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취로 인해 느꼈던 감정에서 빠르게 이전 상태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또다른 대회에 도전하고 준비하려면 뭔가에 취해있는 상태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

―올림픽 직후 후배들을 향해 “메달 땄다고 젖어있지 말라. 해 뜨면 마른다”고 한 조언이 떠오른다.

▷유능한 선수들이 많다. 그러나 반짝했다가 사라진 경우도 참 많다. 나 역시 순간에 취했다 무너져 망가졌던 경험이 있다. 선수뿐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 도움을 주고 싶어 했던 말을 생각하다 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생각에 진심을 담아 전한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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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 결승 미국 브래디 엘리슨과 경기에서 마지막 화살을 발사하고 있는 김우진의 모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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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이 파리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 중 남자 개인전 결승은 올림픽 양궁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다. 전(前) 세계 1위 브래디 앨리슨(미국)과 대결에서 5세트까지 5대5로 팽팽하게 맞섰다. 특히 마지막 5세트에서 김우진과 앨리슨 모두 나란히 30점 만점을 쐈다. 연장 슛오프, 김우진은 앨리슨보다 과녁 정중앙에 4.9mm 더 가까이 화살을 꽂고 극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개인전 결승은 최고 명승부였다.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메달 색이 갈리는데 4.9mm 차였다. 만약에 ‘결과가 반대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한 번씩 한다. 그 4.9mm 때문에 다음 4년을 준비하는 과정도, 양궁 선수로서 인생도 달라졌을 것 같다. 어휴, 다시 생각해보니 아찔하다. (웃음)

―오랫동안 세계 최고를 놓고 경쟁해왔던 결승 상대 엘리슨은 어떤 라이벌인가.

▷앨리슨은 한국인 지도자(이기식 감독)에게서 오랜 기간 배우고 경기력이 올라온 선수다. 그만큼 경기를 할 때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웠다. 나뿐 아니라 다른 한국 선수를 가장 많이 이긴 외국 선수다. 그 선수와 올림픽 금메달을 놓고 경쟁해서 마지막 세트에 ‘텐텐텐(10-10-10)’을 같이 쏘는데, ‘스스로 최고의 선수라는 걸 증명하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존경심을 갖게 만든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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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이우석, 김제덕으로 꾸려진 남자 양궁 대표팀이 2024 파리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승리한 뒤 환호하는 모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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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단체전 금메달도 인상적이었다. 탄탄한 팀워크로 따내서 더 값졌다.

▷함께 출전한 이우석, 김제덕과 단합이 정말 잘 됐다. 바늘구멍 하나 못 들어올 정도로 꽉 뭉친 느낌이었다. 파리올림픽에 나가기 전부터 우리 목표는 뚜렷했다. 단체전 금메달 하나는 무조건 따고 한국에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이전 두 차례 올림픽 때 함께 했던 팀원들도 좋았지만, 이번 대표팀은 가장 파이팅 넘쳤다. 아, 정말 다이내믹한 팀이었다. (웃음)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양궁 로봇’과 평가전을 치른 게 화제였다.

▷로봇과 경기는 독특했다. 한번 화살이 10점에서 빠지면 진다는 생각을 하니까 긴장감을 갖게 됐다. 고득점을 쏴야 하는 상황에서는 로봇과 경기가 좋은 훈련이 됐다. 외부에서는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우리 대표팀에 걱정하는 시선도 많았지만 내부에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자고 선수들과 얘기를 많이 했고, 훈련에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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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양궁 국가대표 스페셜 매치에서 슈팅 로봇과 경기하는 김우진. 대한양궁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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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째 국가대표로 활약해 ‘늘 푸른 소나무’라는 별명이 붙었다. 바늘구멍보다 더 좁다는 양궁 국대 관문을 뚫은 비결은.

▷언젠가 국가대표팀에서 탈락할 날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이 언제일지 모르기에 나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할 때마다 최선을 다한다. 기록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 편이다. 어느새 10년 넘게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어떤 순간이든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내년에도, 그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루에 얼마나 활을 쏘는 훈련을 하나.

▷소속팀에서는 오전과 오후, 야간에 훈련이 있다. 하루 3차례 훈련하면서 약 500발 이상 화살을 쏜다. 야간 운동 없는 날에도 평균 300~400발은 쏜다. 대표팀에서는 새벽 운동이 있는 반면, 야간 운동은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그래도 대표팀에서 훈련하다 선발전이나 중요한 대회가 임박하면 1주일 내내 활을 쏜다.

―많은 걸 절제해야 하는 삶이 힘들지 않은가.

▷내 직업은 양궁 선수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일만 해왔다.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았던 건 최고가 되기 위해 확고히 가졌던 목표의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최종 목표를 향해 미션을 하나씩 수행하는 마음으로 하다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당연히 다른 유혹에 빠질 틈도 없다.

―선수로서 탄탄대로만 걸었을 것 같은데, 어려웠던 적이 있었나.

▷2013년에서 2014년 넘어갈 때가 위기였다. 그 전에 2010년 아시안게임,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 연속 2관왕을 달성하고 기고만장해졌다. 그러다 2012년 국가대표가 되고도 런던올림픽 최종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충격을 받고 슬럼프가 왔다. 재능만 믿으면 안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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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리우올림픽 남자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구본찬, 김우진, 이승윤이 미국을 꺾고 환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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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신의 기량에 대한 확신이 섰던 것 언제였나.

▷2016년 리우올림픽 때였던 것 같다. 고대했던 올림픽을 처음 나갔을 때였다. 확실히 그 대회에 나가 단체전 금메달을 따고 자신감이 붙었다. 그 이후에 초심 잃지 않고, 누가 뭐래도 ‘난 양궁 선수 김우진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려고 많이 노력했다.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의 선봉에 서 있다. 한국 양궁이 최고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선수들은 세계 1등을 해도 그 다음해에 떨어질 수 있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걸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국내 양궁 선수는 한 명도 없다. 그만큼 항상 긴장하게 되고,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여기에다 양궁협회는 선수의 기량을 높이는 것에만 집중한다. 간섭이 없고 오직 지원에만 집중한다. 한 울타리에 물이 고이지 않고, 계속 흐르게 만든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선수 입장에서는 정말 행복하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등 이미 많은 걸 이뤘다.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는가.

▷난 아직 선수다. 당장 은퇴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 은퇴하고나서 활을 놓는 시점에서 나를 돌아봤을 때 가장 빛났던 순간이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파리올림픽 3관왕을 했지만 다음 LA올림픽에 나가서 또 3관왕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 아닌가.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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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이 최근 충북 청주 김수녕양궁장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한 뒤 과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주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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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우진에게 새로운 도전은 어떤 의미인가.

▷늘 새로운 길을 들어서는 느낌이다. 도착지를 알 수 없는 여정을 시작하는 건 언제나 두려우면서도 설렌다. 내 양궁은 아직 70점만 보여준 것 같다. 남은 30점을 채우기 위해 앞으로 더 나아가는 미션을 수행하는 김우진이 되고 싶다.

―‘양궁 선수 김우진’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내가 살아온 인생의 절반 이상을 양궁과 함께 했다. 그동안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왔다. 오랫동안 양궁을 해온 만큼 훗날 2020년대를 넘어 그 이후까지 ‘양궁 하면 김우진이 최고였지’라는 말을 듣고 싶다. 내년에도 그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싶다. 많이 지켜봐달라.

■ 양궁 국가대표 김우진

△1992년 충북 옥천 출생 △2001년 양궁 시작 △올림픽 통산 금메달 5개(2016 리우 남자단체, 2020 도쿄 남자 단체, 2024 파리 남자 개인‧단체‧혼성) △아시안게임 통산 금메달 3개(2010 광저우 개인‧단체, 2018 자카르타‧팔렘방 단체) △세계선수권 통산 금메달 9개(개인 3개, 단체 4개, 혼성 2개) △양궁 월드컵 파이널 개인전 금메달 5개(공동 1위) △양궁 남자 개인전 세계 1위(12월 25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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