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
“제가 겪은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는 법으로 처벌할 수도 없고 교사의 교육활동 침해도 아니라고 하는데…. 이 현실이 슬프고, 억울하고, 무섭습니다. 인격적 모욕감을 견디기 힘듭니다.”
광주광역시의 한 중학교 교사 ㄱ씨는 2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올해 가을, 그가 가르쳤던 학생이 교사인 자신과 여학생들의 사진을 도용해 합성 성범죄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광주동부교육지원청 지역교권보호위원회는 지난 11월 학생이 ㄱ씨 사진으로 합성 성범죄물을 만든 행위는 교사의 교육활동 침해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 피해 교사는 이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학교에서 교사를 상대로 한 딥페이크 성범죄가 발생할 거라곤, 그 피해자가 자신일 거라곤 ㄱ씨는 상상하지 못했다. 피해를 알게 된 이후, 매일 아침 학교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상을 살아내기가 버거워졌다.
“성범죄물을 본 학생이 있는 교실에서 수업해야만 했는데 고통스러웠어요. 누군가 그 사진을 또 봤을까, 학생들 사이에 이야깃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의식하게 되고 위축됐습니다. 외부 행사에 참여했을 때도 제 쪽으로 카메라가 향하자 공포감이 느껴졌어요.”
학생들의 피해는 학교폭력 사안으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열렸고, 교사가 겪은 피해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에 따른 교육활동 침해 사안으로 관할 교육지원청에 보고됐다. 경찰 수사도 함께 이뤄졌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 ㄱ씨는 피해자가 아닌 ‘참고인’이었다. 당시만 해도 합성 성범죄물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반포(유포)할 목적’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했는데, 가해자에게 이런 의도는 없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조항이 인격권을 훼손하는 성범죄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반포할 목적’ 단서가 삭제된 개정법이 10월16일부터 시행 중이다. 지금은 합성 성범죄물을 만들었단 사실만 확인하면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나마 학생을 상대로 한 딥페이크 성범죄는 이런 단서 조항이 없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을 적용해 처벌이 가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9월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학교 불법합성물(딥페이크) 성범죄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 전교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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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씨는 자신의 피해를 교육 전문가와 학부모, 교사 등으로 구성된 지역교권보호위원회에선 구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피해를 교육활동 침해로 인정받아야 가해자와의 분리나 치료를 위한 휴가 사용 등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지역교권보호위는 개정 이전 성폭력처벌법 등을 근거로 ㄱ씨 피해가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교원지위법에 따르면, 성폭력처벌법상 성범죄는 곧 교육활동 침해행위이다. 교육부의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2024년)을 보면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역시 교육활동 침해로 제시돼 있다. 교실이 아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피해자 모르게 이뤄지는 모욕·명예훼손 행위도 교육활동 침해라고 제시돼 있다. 그런데도 이번 사안을 교권 침해로 보지 않은 건 교사의 교육활동을 수업 중에 벌어지는 일로만 너무 좁게 해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교권보호위 결정을 받아든 ㄱ씨는 자신의 피해가 정말 심각한 피해인지 스스로 의심하는 또 다른 고통에 직면했다. 가해자가 학생인 까닭에 교사로서 책임감과, 범죄 피해자로서 느끼는 두려움이라는 이중고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고통을 학교 안 동료 교사들에게 털어놓기도 어렵다. “저는 행여 가해 학생과 마주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주변에 알리지 못해 답답하고, 속상하기도 합니다.”
ㄱ씨의 훼손된 인격권과 교권을 지역교권보호위가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전교조 광주지부는 12일 성명을 내어 “교사의 교육활동은 그 시대의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평균인의 입장에서 규범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며 “학생이 교사의 얼굴로 합성 성범죄물을 제작한 것 자체로 교사 인격과 명예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교권보호위 처분은 교사의 인격권과 교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는 부당한 결정”이라며 “교육활동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시정조치를 하라”고 촉구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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