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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기자가만난세상] 당국자 마인드 못 버린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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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사관이 불쾌감을 느끼면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자기가 몸담은 위원회에서 사퇴해야 할까.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이 놀라운 식민적 발상이 표출된 곳은 지난 16일 외통위 회의장이다. 국민의힘 김건 의원은 회의가 시작되자 돌연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김준형 의원이 주한 미국대사가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전화를 했으나 되지 않아 본국에 윤석열정부 사람들과는 상종을 못 하겠다고 보고했다고 한 걸 문제 삼았다. 그는 미국 대사관이 부인했는데 영어로 “utterly false”로 “완전한 가짜”라는 뜻이며, “외교적으로 잘 쓰지 않는 표현으로서 상당한 불쾌감이 묻어”난다고 했다. 이어 “국익을 훼손하고 여기(외통위)서 하는 발언의 무게를 실추시켰으니 사과하고 사임하라”고 했다. 조 장관도 김준형 의원을 향해 “상종말라가 영어로 뭐였냐” 거들었다.

utterly false가 직역하면 ‘완전한 거짓’인 건 맞다. 미 대사관은 한국어로도 입장문을 내면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김건 의원 말도 미 대사관 입장 왜곡이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비상계엄과 외교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 한복판에서 이런 어구 싸움이 정말 이상하단 것을. ‘윤석열정부 사람과 상종을 못 하겠다’고 했는지는 미 국무부가 국가기밀인 외교문서를 내놓기 전에는 검증할 수 없는 문제다. 국민은 똑똑하므로 김준형 의원의 제기와 미국 대사관 입장문, 사태의 전개를 보며 상황을 종합해 판단하면 된다.

세계일보

김예진 외교안보부 기자


외교대화 노출이나 어구에 마땅히 민감한 사람들도 있다. 외교현장의 외교관들이다. 김건 의원을 보면 당국자인지, 의원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다른 의원들이 자료제출 문제로 정부를 향해 질타하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위원장을 향해 말하라”고 제지하거나 “한·아프리카정상회의가 잘 못 알려졌다”며 자신의 질의시간에 조 장관이 성과를 홍보토록 한 적도 있다. 4월 총선, 그가 외교부에서 국회로 직행할 때, 퇴직 외교관의 말이 떠오른 적 있다. 커리어(직업외교관) 출신들이 관료 습성을 버려야 장관이든 정치인으로든 성공하는데 그게 안 돼 성공사례가 드물다는 거였다. 서열문화가 강하고 폐쇄적인 외교부 출신인 그가 선배인 장차관들을 상대로 제대로 질의할까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래도 몇몇 외교부 인사는 기자에게 “이젠 후배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로 대해야죠”라고 했다.

그가 앞으로 당국자 마인드를 버리고 국민 편에서 국민 알권리를 위해 묻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한·미의 엇박자를 떠올린다면, 계엄이 준비되던 10월18일 외교부도 아닌 국정원이 왜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기정사실화했고 미국은 인정하지 않았는지, 12월21일 외교부가 왜 “한덕수 권한대행은 유능하고 존경받는 지도자”라는 인물평을 미국의 말을 빌려 공개했는지, 영어로 뭐였는지와 같은 질문일 것이다.

주한 미 대사의 보고는 30년 후쯤 기밀이 해제되면 확인될 것이다. 우선 알 수 있는 건 그가 계엄 직후 인터뷰에서 “계엄령이 해제돼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외통위에서는 계엄해제 투표에 불참한 의원들부터 사과하는 게 먼저다. 김건 의원도 투표하지 않았다.

김예진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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