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 자구책 속 차질 없는 발표 '환영'…"정부와 긴밀히 소통"
정부 소극적 역할에 아쉬움도…"'골든타임' 놓치지 않아야"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 중 하나인 석유화학 산업이 공급 과잉에 따른 구조적 불황으로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한 만큼 향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보다 속도감 있는 정책과 재정 지원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
신학철 한국화학산업협회장은 이날 협회 명의 입장을 내고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이 차질 없이 발표된 것에 대해 업계를 대표해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이어 "이번 경쟁력 제고 방안이 석유화학 산업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주력산업으로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정부·업계와 긴밀히 소통해 제시된 대책들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중국이 석유화학 자급을 목표로 2018년부터 대대적인 설비 증설에 나선 가운데, 중동도 석유화학 산업을 미래주력산업으로 육성하고 나서며 범용품 중심의 성장 전략은 사실상 한계에 봉착했다.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금액)는 2022년 이후 손익분기점인 t당 300달러를 밑돌고 있다. 주요 NCC 기업들은 3년 연속 영업 적자를 지속하는 등 역대 최악의 업황을 기록 중이다.
문제는 글로벌 공급 과잉 현상이 2028년까지 심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그 이후에도 업황 회복 가능성이 작다는 데 있다.
그간 업계에서는 한 번에 많이 벌어두고 버티는 식의 사이클이 자리 잡았으나, 이제는 시장에 상당한 석화제품 물량이 쏟아져나오면서 버티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LG화학 여수공장 |
이미 석유화학 업계는 생존을 위해 투자를 축소하고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지난 10월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LUSR의 청산을 결정한 데 이어 현재 60% 이상을 차지하는 기초화학 포트폴리오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
LG화학은 2022년 3월 대산 SM공장의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올해 3월 여수 SM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최근에는 여수공장의 폴리염화비닐(PVC) 생산 라인을 일부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정밀화학, 배터리 소재 등 고부가가치 친환경 산업구조로의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LG화학은 기존 폴리염화비닐(PVC)이 가진 단점인 내열성을 극복한 초고중합도 PVC를 개발했다. 롯데케미칼은 강철 소재 대비 약 30% 무게를 줄인 '열가소성 장섬유 복합재(LFT)'를 개발하고 모빌리티 구조물, 가전제품, 산업자재 등에 적용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고기능성 타이어용 합성고무(SSBR)와 이차전지 신소재로 주목받는 탄소나노튜브(CNT)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다만 이 같은 개별 기업의 위기 극복 노력에도 구조적 불황의 골이 깊은 만큼 정부의 속도감 있는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이날 ▲ 공급과잉 NCC 설비 합리화 ▲ 글로벌 시장 경쟁력 보강 ▲ 고부가 제품 전환을 중심으로 한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놨다.
여기에는 설비 폐쇄와 사업 매각, 합작법인 설립 등 기업의 자발적 사업재편을 지원하고 이로 인한 고용과 지역경제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을 검토하는 내용이 담겼다.
유동성 해소와 사업 전환을 위해 총 3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자금을 공급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나프타와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대한 무관세 기간 연장 등을 통해 비용 절감을 유도하고, 고부가 소재 기술과 탄소감축 핵심 기술 등 관련 연구개발(R&D)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서 9개 NCC 기업을 디자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올드한 방식"이라며 "기업의 자발적인 사업 재편 의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빨리 일어날 수 있도록 기존 제도에서 취약한 부분이 있다면 해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덕근 장관, 석유화학업계 간담회 주재 |
업계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을 즉각 타개할 수 있는 회심의 지원책이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기업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전후방에서 전폭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만큼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제품을 많이 팔아서 이익을 내야 하는 시스템상 비용 효율화, 금융 지원 등을 통한 방향이 당장 중동이나 중국의 과잉 공급을 해결하는 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국내 업체들의 노하우, 중국 업체와의 기술 격차 등을 고려하면 정부의 지원책은 기업들이 버티는 데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업체가 공급 과잉 상태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물량 조절을 하거나 가격 정상화 등을 만들기 어려운 만큼 생존을 위해서는 버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탄핵 정국으로 정부의 대책 발표가 늦춰지거나 추진 동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했던 만큼 일단 정부가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놓은 것 자체에 대해 안도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 관계자는 "탄핵 정국 속에도 불황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 산업에 뭔가 하려는 움직임은 긍정적"이라며 "정부의 서포트로 기업들이 자생, 회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경쟁력 제고 방안이 전반적으로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측면이 크고, 정부의 역할이 앞서 사업재편을 겪은 일본 등에 비하면 소극적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인수·합병(M&A)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석유화학산업에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등의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적극 지원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내용"이라며 "기존에 예상했던 것 이상의 대책은 없어 석화산업의 불황을 당장 타개할 만한 방안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하다"고 꼬집어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후속 조치와 실행력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진행돼야 한다"며 "큰 그림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내년 초 산업계 스스로 독립적인 전문기관을 통해 사업 재편 계획을 마련할 수 있도록 컨설팅 용역을 추진하고, 범부처 대응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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