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유진 | 오픈데스크팀장
“총리, (윤석열 대통령의) 손목이라도 발목이라도 붙잡았습니까? 아니면 바짓가랑이라도 붙들었습니까?”
지난 11일 국회 긴급 현안질문에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물었다. 한 총리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라도 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느냐”고. ‘내란의 밤’ 대통령 지근거리에 있었던 한 총리를 비롯한 10명의 국무위원은 정녕 그를 막을 수 없었느냐고. 이날 국회에 나온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는 강하게 (계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말하자 누군가 “그러면 나와서 언론에 알렸어야지!”라고 외쳤다.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국무위원 한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파국까지 치닫게 된 것에 깊은 슬픔과 배신감을 느낀다”는 이 의원의 말에 나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공감했을 거라 믿는다.
이날 한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를 자신이 소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계엄의 절차적 흠결을 보완하려는 게 아니라, 국무위원들과 함께 (계엄을 선포하지 못하도록) 윤 대통령을 설득하려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계엄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왜 국무회의 성립 요건인 11명 정족수가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채워지자마자 (국무회의를 열어) 5분 만에 산회했느냐’는 이 의원의 질문에 한 총리는 마땅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맞춘 것은 오직 정족수뿐이었다. ‘전두환 신군부’조차 지킨 부서 절차도 건너뛴, 회의록도 남아 있지 않은 그날의 국무회의는 한 총리의 말마따나 “정식 국무회의라 해야 될지도 명확하지 않으며 많은 절차적·실체적 흠결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한 총리는 “후회한다”고 했다. 이날 윤건영 민주당 의원이 “내 목을 베고 가라고 드러누워야 되는 게 바로 국무총리(의 자리)”라며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지금 후회하고 있느냐”고 묻자 한 총리는 “후회한다”고 답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담벼락을 넘는 사진을 보고는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했다. 같은 날 한 총리는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제가 져야 할 책임을 변명이나 회피 없이 지겠다”고도 했다.
14일 내란죄 피의자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한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동시에 그는 내란 혐의로 고발된 피의자 신분이기도 하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그를 불러 비공개 대면 조사했다고 밝혔다.
불과 10여일 전 “후회한다”던 한 권한대행의 최근 행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권한대행은 19일 양곡관리법과 국회증언감정법 등 6개 쟁점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12일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된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은 어떤가. 특히 ‘내란 특검법’의 경우 내란 관련자들의 증거 인멸 등이 우려되는데도 거부권 최종 시한(내년 1월1일) 전날인 31일까지 검토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한덕수는 내란 사태 피의자 신분임을 명심해야 한다. 특검 거부는 셀프 방탄”(황정아 민주당 대변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들은 다시 추운 겨울 거리로 나섰다.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으로 향하던 이들의 손에는 “내란특검 즉각 공포하라” “내란 공범 한덕수가 거부권이 웬 말이냐”고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거리에서는 “오랜 시간 공직 생활을 해온 공무원으로서 국민만 바라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날 밤 손목도, 발목도, 바짓가랑이도 붙들지 못한 것에 대해 한 권한대행은 여전히 후회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후회의 유효기간이 끝난 것일까. 만약 전자라면, 두 특검법을 당장 공포하는 것이 “한평생 믿고 많은 일을 맡겨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길임을 한 권한대행은 정말 모를까. 그의 대답을 듣고 싶다.
yjlee@hani.co.kr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