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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기고] 야당·재야단체가 아니라 법이 수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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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양승태 이화여대 명예교수


역사는 대체적으로 구조적인 필연성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는 권력자의 우매함이나 광기로 어처구니없는 소극(笑劇·farce)으로도 나타난다. 현재의 국가적 사태는 소극을 넘어 허무개그 수준이다. 비상계엄령이 비상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삼엄하지도 않게 시행되자마자 철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허무개그에 이 시대 대한민국 정치의 실상이 축약되어 있다. 출중함과 엄정함과 진지함이 지배해야 할 영역에서 무능과 파렴치와 위선이 제멋대로 떠들며 희희 낙낙해 왔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서는 오래 전부터 국가적 경륜과 식견을 갖춘 인물이 사라진지 오래고, 전문적인 지식을 제대로 갖춘 인물들마저 찾기 힘들어진지 오래이며, 그 자리를 계산속만 빠른 범속하고 졸렬한 품성의 인간들이 채운지도 오래다. 범법혐의자들마저 자숙하기는커녕 몸보신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국가운영에 필수적인 제도와 관행은 물론 행정체계와 사법체계마저 거침없이 무너뜨리는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신중해야 할 공무원에 대한 탄핵마저 고위 책임자와 하위 수행자를 가리지 않고 남발되면서 삼권분립의 헌정질서마저 유린당해 왔다.

국가에 대한 허무개그 수준의 장난질이 또 다른 성격의 집요한 장난질을 순식간에 덮어주면서 국가 전체가 혼미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의 죄업이 마치 집권세력 전체의 죄업인 듯 일각에서는 민중혁명 운운하며 반(反) 헌법적 방식의 정권교체마저 시도하고 있다. 그들이 과연 그러한 행동을 벌일만한 자격이 있는지 많은 국민들이 의심하고 있지만, 또한 과연 현재 대한민국의 시민사회가 그들의 선전선동에 그리 쉽게 농락을 당할 만큼 녹녹한 존재인지 그들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위해서라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허무개그를 종료시킨 결정적인 주체는 민중이 아니라 시민이다. 국가권력에 일방적으로 순응하거나 그 억압에 울분으로 저항한 ‘백성의 무리들’이 아니라, 주권자 의식을 가지고 이성과 절제된 행동으로 반 헌법적인 행위를 규탄한 시민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다수 야당의 실질적인 헌정파괴 행위를 혐오하였지만, 외양상이나마 법적 형식은 갖추었기 때문에 더 큰 대의를 위해 용인한 것일 뿐이었으며,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헌정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 때문에 거리에 나선 것이다.

사태의 본질은 그 극복방안을 제시한다. 현재의 사태를 극복할 주체는 무력한 여당이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쟁취에만 몰두하고 있는 야당이나 재야 단체들이 아니라 합리성과 프로의식으로 국가 전체를 도약시킨 시민사회이다. 그 수습책으로도 국민정서에 반하는 책략이나 정권획득만을 앞당기려는 목적에서 대중들을 선동하며 국가생활 전체를 마비시키는 정략 모두가 용인될 수 없으며, 시민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그 집합적 이성이 작동하는 가운데 냉철하고 엄격한 사법행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국가적 혼미사태의 중심에 있는 대통령은 물론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범법혐의자들은 신속하고 엄정하게 사법처리 되어야 한다. 다만 다른 범법혐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내란혐의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미리 단정되어서는 안 되며, 형법과 형사소송법의 법리 및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단죄되어야 한다. 국회는 헌법의 규정에 따라 탄핵을 통해 대통령의 직무를 중단시킬 수는 있지만, 국회의원이 사법처리에 직접 관여하는 태도를 넘어 재판관을 참칭하는 언행은 당연히 국민의 이름으로 징치되어야 한다. 다수당의 지위를 민주주의를 농락하고 국법질서를 무시하고 행정 및 사법체계를 교란할 수 있는 권한으로 믿는 정파가 민주주의와 헌법의 수호자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또 다른 국가적 소극일 뿐이다.

이 시대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목소리만 크고 정신적으로 빈곤한 집단이 민주주의를 허울로 내세우고 대중을 선동하며 폭정을 자행한 데 있다. 국체조항인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정면으로 부인되어 온 것이다. 민주공화의 이념은 다수이든 소수이든 비이성과 자의(恣意)에 의한 폭정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결코 오늘의 사태 정도로 ‘대란(大亂)민국’이 될 나라가 아니다. 국가적 장난질의 책임자 모두가 엄격한 사법절차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되면서 이 어처구니없는 국가적 혼미상태는 빠른 시일 안에 끝날 수 있다. 오늘의 혼란은 파괴당한 헌정질서를 새롭게 확립하고 훼손당한 국체를 창조적으로 복원하면서 새로운 이성의 시대가 열리기 위한 진통일 것으로 믿는다. 안개가 아무리 자욱해도 태양이 뜨면 흩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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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이화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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