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변화에 대응 우려…상당 기간 ‘코리아 패싱’ 예상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2월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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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윤석열 없는 ‘윤석열 정부’가 시작됐다. 대통령 업무가 정지되는 탄핵 정국은 2004년 노무현,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때에 이어 세 번째다. 헌법 제71조가 정한 대로 대통령 권한대행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맡았다. 한 권한대행은 2004년 고건, 2016년 황교안 권한대행처럼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변화’보단 ‘안정적 국정관리’를 목표로 한다는 방침이다.
한 권한대행이 맞닥뜨린 대내외 상황은 2016년 1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이어진 황 권한대행 때와 닮았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직권 남용, 공무상 비밀 누설 등 형법상 혐의가 핵심이었다. 윤 대통령 탄핵도 형법상 내란죄 혐의가 쟁점으로 꼽힌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미국 정부가 교체됐다. 2017년 1월 20일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했다.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만큼 또다시 권한대행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대응해야 할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실질적 요건, 명분뿐만 아니라 시기조차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누가 외교를 할 것인가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이 아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월 17일 원내 대책회의에서 한 말이다. 탄핵 정국 속 권한대행의 모호한 지위,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대외 상황을 통해서도 추론해볼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2월 1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만난 후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언급이 나왔지만 윤 대통령이나 한 권한대행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한국 외교의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우려는 외교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인은 윤 대통령이나 한 권한대행을 자신의 카운터 파트너로 보지 않는 것”이라며 “실리·거래주의 관점에서 봐도 윤석열 정부는 이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과의 전략경쟁에 집중하기 위해 한반도 긴장을 낮춘다’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 기조에 ‘12·3 비상계엄 사태’가 변수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또 홍 위원은 “안타까운 것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향후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에서 한국이 수세적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된 점”이라며 “주한 미군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비상계엄이 아무런 통보도 없어 선포되며 미국 정부는 한국이 주한미군에 지급해야 할 ‘위험수당’을 올려야 한다고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역시 “현재 권한대행 상황이나 헌재 결정에 따라 가까운 미래에 정부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 외교적으로 좋지는 않다”며 “외교적 거래를 좋아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성향상 자신과 상대할 카운터 파트너가 어느 정도 권한을 갖고,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지가 명확해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데 한 권한대행은 이 모든 것에서 불확실성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혼란이 단기간에 종식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른다. 아무리 빨라도 3~4월에나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가결됐는데 이듬해 5월에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탄핵이 기각될 경우, 계엄으로 추락한 신용도를 언제, 어떻게 회복할 것이냐가 전부 안갯속에 빠진다. 이로 인해 상당 기간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없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상황이 전개될 것이란 지적이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1월 13일 워싱턴의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고 있다./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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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수 있나
미국의 정치적 변화는 이미 한국의 경제·안보 문제와 직결되고 있다. 지난 12월 16일 로이터는 트럼프 당선인 정권 인수팀의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를 보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 폐지 등 지원을 대폭 축소하고, 배터리 소재에 대해서도 전 세계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배터리, 배터리 소재 모두 한국의 주요 산업이다. 해당 보도가 나온 직후 열린(12월 17일) 한국 주식시장에서 전기차 및 2차전지 관련 업종이 크게 하락했다. 안보 상황 역시 유사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1기 행정부를 이끌 당시 북·미 간 직접 협상을 추진했다. 한·미·일 협력을 통한 압박을 택한 미국 민주당 정부와는 다르다. 변화의 징후는 이미 나타났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2월 14일 ‘특임 대사’로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일 대사를 지명하고 그의 업무는 “베네수엘라와 북한을 포함한 전 세계 가장 뜨거운 일부 영역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넬은 지난 7월 17일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나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대통령이 김정은과 직접 대화에 나선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해당 사안들은 모두 정부 간 조율이 필요하다. 배터리 문제의 경우 트럼프 정권 인수팀 역시 ‘동맹국들과 개별적 협상을 통해 예외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야 할 컨트롤타워가 한국에 없거나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직무 정지, 국방부 장관은 공석, 육군참모총장은 구속 상태다. 한 권한대행부터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은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행적과 관련해 비판받고 있다. 앞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 특히 정상 간 안보 문제를 협의할 방법이 없다는 점은 불안감을 키운다. 홍 위원은 “트럼프 당선인의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 같은 것이 아닌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라며 “정부가 정상적으로 운영됐다면 한·미 간 조율 없는 변화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북·미가 접촉해 협의해도 한국은 이 구조를 추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한덕수 권한대행과 트럼프 당선인의 정상 외교, 방미 특사단 파견 등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2017년에도 트럼프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을 대신한 황 권한대행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차분하게 상황을 직시하고,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차 위원은 “지금 상황에서 최선은 윤석열 정부가 유지되든, 바뀌든 한·미동맹·주한미군을 부정하는 정권이 한국에 들어설 수는 없다는 점을 미국에 알리는 것”이라며 “오히려 정상회담이 어려운 만큼 실무선에서 현안에 대해 먼저 협의하고, 해당 결과를 토대로 향후 한국 정부가 안정되면 정상회담으로 이어가는 방법 역시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정상적 기능 수행이 어렵다면 국회 차원에서 ‘의원 외교’ 등을 통해 미국과의 우호 관계를 도모하는 등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 위원은 “탄핵이 어떤 쪽으로 결론이 나든 윤 대통령이 한반도 위기 상황을 자초하며 미국 및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며 “이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안정 구상은 효용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기존과 다른 전략, 인물들을 내세워 진정성 있게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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