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물품 모두 품는 ‘토트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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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은 가깝고도 흔한 일이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한국인이 720만명이나 다녀온 관광지이며, 최근 관광 특수를 맞은 방일 외국인 중 압도적 1위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런 익숙한 일본에 들를 때마다 반복해서 같은 자극을 받고 돌아온다. 모노톤 정장과 롱코트를 갖춰 입은 도시인들의 구둣발에 발맞춰 걷다 보면, 관리와 착용 모든 면에서 불편하고, 상대적으로 비싸고, 아저씨라는 인상을 주기 딱 좋음에도 그들처럼 정장을 입고 출근하고 싶어진다.
정장의 묘미는 규격 안에서 즐기는 멋이다. 특정 브랜드 로고나 유행에 의탁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취향과 개성, 신뢰감 등을 발견되듯 전달할 수 있다. 물론 일본에서도 경량 패딩 조끼와 백팩으로 활동성을 더하고, 관리가 쉽고 저렴한 합성섬유 정장을 많이 입는다. 하지만 우리네 전투복 문화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그들 손에 하나씩 들려진 잘 익은 토트백이다.
여성 잡화로 더 익숙하지만, 토트백의 시초는 1950년대 엘엘 빈, 필슨 등 실제로 거친 들판에서 돌을 옮기는 데 쓰이던 미국의 워크웨어 브랜드들이다. 이후 여성들의 전유물로 인식되다가 2010년대에 들어 맨즈웨어의 영역으로 다시 넘어왔다. 역시나 시작은 일본이었다. 프랑스 브랜드 롱샴의 토트백, 일본 직장인의 필수품 중 하나인 포터의 나일론 제품들, 상남자의 서류가방으로 초기 미국발 맨즈웨어 열풍을 일으켰던 필슨의 256과 토트백 등등은 각기 다른 매력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정장의 오랜 단짝인 가죽 서류가방을 빠르게 대체했다.
입구가 크게 열려 있다 보니 대중교통 이용 시 대응하기도 훨씬 편하고, 물건도 더 많이 가지고 다닐 수 있다. 초고가 브랜드의 최고급 가죽 제품부터 면, 나일론까지, 소재, 가격, 스타일 차원에서 훨씬 다양하게 누릴 수 있어서 멋을 내기에도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꽤나 불편하다. 대체로 큼직한 크기에다 통가죽이나 튼튼한 면으로 만든 제품들은 멋진 만큼 무게가 상당하다. 옷의 태와 옷감을 위해선 늘 손으로 들어야 한다.
토트백./미스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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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토트백은 날로 캐주얼해지고 있는 정장의 마지막 보루다. 멋있게 익은 큼직한 토트백은 두툼한 장지갑과 동전지갑, 열쇠 꾸러미, 손수건 등등 터치리스, 클라우드 시대에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신사의 물품을 여전히 품어준다. 오래 들고 있으면 어깨가 빠질 것 같고 전완근의 악력이 요구됨에도 갑옷과 같은 격식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 편리를 빠르게 좇기보단 자기만의 세계를 지켜가기 위해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 튼튼한 소재로 정교하게 만든 남자의 토트백은 무엇이든 꺼내줄 수 있을 것 같은 신사들의 도라에몽 주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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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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