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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에디터의 창]민주주의의 배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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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의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 윤석열은 직무가 정지됐지만, 아직 파면당하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권력자를 제어해야 할 집권여당은 그를 보호하고 있다. 민심은 안중에도 없다.

윤석열은 지난 14일 탄핵안 가결 직후 담화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라를 분열시키고 혼란을 가중시키더라도 버티겠다는 것이다. 자신으로 인한 국정 혼란과 국민 불안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국정지도자 자격이 없는 이런 인물은 영구 파면이 정답이라는 게 다시 한 번 분명해졌다.

다만 그 과정은 지난할 것이다. 윤석열은 다양한 트집을 잡으면서 정치생명 연장을 노릴 것이다. 이미 헌법재판소가 보낸 탄핵 관련 서류 수취를 거부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도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를 옹호하겠다는 뜻을 노골화하고 있다. 공석인 국회 몫 헌법재판관 임명 추진에 반대하고, “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보인 행태는 당명을 떼야 할 정도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참여한 의원은 단 18명뿐이었다. 나머지 의원 90명은 뭘 하고 있었나. 국민의힘은 1차 탄핵안 표결 때는 105명이 불참해 무산시켰고, 2차 탄핵안 의결 때도 85명이 반대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때는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의원 128명 중 최소 62명이 찬성했다. 그때보다 윤석열의 탄핵 사유가 덜하다는 뜻인가. 반면 탄핵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당대표를 쫓아내고 탄핵 찬성표를 던진 동료들을 ‘배신자’라고 공격했다. 보스 아래 ‘의리’로 뭉치는 조폭과 다를 바 없다.

국민의힘은 8년 전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들은 박근혜 탄핵 때도 ‘배신자 프레임’으로 한 줌뿐인 기득권을 유지했다. 개혁과 쇄신은 사라지고, 우경화로 치달았다. 자생력도 잃어버렸다. 보수의 목에 칼을 꽂았던 윤석열을 영입해 정권을 재탈환했지만 권력의 단맛에 취해 야수의 폭주를 제어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이미 죽은 줄 모르고 돌아다니는 좀비와 다를 바 없다.

이번에 확인했듯이, 우리 내부에는 헌법 제1조(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부정하려는 요소들이 계속 존재한다. 이를 제어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언제든 과거로 퇴행할 수 있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 정치권이 할 일은 분별력을 잃은 권력자를 제어할 비상조치다. 국민의힘은 집권여당으로서 자격이 없다.

정작 나라와 민주주의를 지켜온 건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민주공화국의 중단을 막기 위해 무장한 계엄군을 막아섰고, 불의한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그 똑똑하다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달랐던 점은 양심이 시키는 대로 저마다의 용기를 냈다는 것이다.

3·1독립선언서는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가”며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리려” 한다고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계엄군을 막는 시민들에게서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으며,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젊은 계엄군들의 행위를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행위”라고 평가했다. 그가 <소년이 온다>를 쓰려고 ‘1980년 광주’를 취재하며 만난 자료에 시민들 곁을 지키다 살해된 야학 교사는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라고 썼다.

이런 작지만 적극적인 행위들이 3·1독립운동부터 4·19, 5·18, 6·10, ‘박근혜 탄핵’ 촛불, 그리고 이번 탄핵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것이다. 이를 두고 한 외신 기자는 “한국인들은 나라가 어두우면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 나온다”고 평가했다.

이승을 떠도는 좀비들은 영화 <넘버3>의 ‘불사파’ 두목의 말을 읊조린다. “내 말에 토토토토토토 토다는 XX는 전부 배반형이야 배반형. 배신, 배반형!”

민주 시민들은 토를 단다. 윤석열은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으로 헌정 질서를 짓밟고,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을 유린했으며, 시민에게 총부리를 돌렸다. 탄핵이야말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헌법적 절차다. 이를 배신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대한민국과 국민에 대한 또 다른 배신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경향신문

김진우 정치에디터


김진우 정치에디터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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