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8일 오후 강원 춘천시 온의동 한 도로에서 열린 집회 참가자들이 윤석열 정권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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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내란 사태는 한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친위 쿠데타가 일단 진압됐더라도, 우리가 ‘내란이 일어나고만’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는 이념, 정견에 상관없이 힘을 합쳐 내란의 뿌리를 뽑는 일에 나서야 한다. 뿌리가 없고서야 독을 품은 열매가 열릴 리 없다. 뿌리는 여러 가닥이겠지만, 그중에서도 반드시 직시해야 할 게 있다. 제6공화국에서 당연시되어 온 권력 집중의 신화가 그것이다.
현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며 제정됐고, 그래서 직선 대통령이라는 단 하나의 구심을 바탕으로 국가의 나머지 질서가 구축돼 있다. ‘직선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이 구조는 4공화국, 5공화국과 단절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3공화국으로 회귀했다고도 할 수 있다. 제3공화국 헌법을 탄생시킨 주역은 물론 5·16 군사 쿠데타 세력이다. 이들은 산업화나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최대한 집중돼야 한다는 생각을 제3공화국 헌법에 새겨 넣었다.
제6공화국 헌법은 이런 권력 집중의 신화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4공, 5공식 독재는 청산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라면 민주 헌정을 충실히 수호할 것이라는 대전제에 발 딛고 서 있다. 그리고 이 질서는 지난 40여년간 별문제 없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대다수 대한민국 시민은 여전히 더 나은 계몽 군주에 대한 기대를 담아 대통령 선거에 민주주의의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12월3일 밤, 우리는 이 질서의 대전제가 실은 얼마나 불안하고 불확실한 것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민주공화국의 수호자로 상정됐던 그 대통령이 민주공화국을 전복하기 위해 내란을 기획, 조직하고 진두지휘했다. 윤석열은 전 정권에 불만을 가진 광범한 유권자의 평균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며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이런 가면을 벗어 버리고 극우 이념과 음모론에 휩쓸리는 극소수의 대변자로 분연히 일어섰다. 그 밤에 제6공화국이 딛고 서 있던 지반이 무너졌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친위 쿠데타로 4공(유신) 시대를 연 것 역시 제3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었는가. 윤석열은 이 전례를 철저히 학습하고 반복하려 했을 뿐이다. 박정희 시대가 이후의 헌법들에 남긴 시한폭탄을 꺼내 단추를 눌렀을 뿐이다. 집중된 권력을 손에 쥔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적 민주주의(혹은 K민주주의)’의 세계와 친위 쿠데타, 군사 반란, 독재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는 이토록 흐릿한 것이었다.
이런 사건이 ‘저질러진’ 이상 이제 우리의 모든 민주주의 제도는 이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윤석열은 너무나 기괴한 인간형이어서 또 다른 ‘윤석열’들이 나오기는 힘들다는 가정은 성립할 수 없다. 윤석열이 감히 ‘국민’과 동일시한 극우 유튜브 방송은 낡은 시대의 유산이 아니라 최첨단 현상이다. 초집중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놔둔다면 이 제도가 이런 미지의 흐름들과 만나 민주공화국의 골간을 흔들 가능성이 계속 늘어나기만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내란 사태 이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분명하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국회로, 지방으로, 시민으로 분산하는 전면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계와 약점을 노출한 제6공화국만이 아니라 ‘장기 제3공화국 시대’를 비로소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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