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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일사일언] 요즘 열정 이야기 했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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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후배들에게 ‘열정’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 우리 때는 무슨 일이든 열정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배웠고, 열정이 없는 청춘은 전기가 없는 전기 면도기처럼 쓸모없는 취급을 받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며칠 밤을 새우며 일하는 것도 열정이었고, 돈을 안 받고 일하는 것도 열정이었고, 맞고 혼나면서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열정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후배들에게 그 ‘열정’ 이야기를 못하겠다. 열정이 많은 사람이 먼저 지치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열정이 넘치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잘된 사람들 보면 속으로 ‘고스톱 쳐서 저 자리에 간 게 아니겠지’ 하다가도, ‘좋은 학교 나오고, 열정이 많다고 꼭 높은 자리에 앉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들어서 더 이상 후배들에게 열정에 기름을 부으라는 말을 못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멀리 보라”는 말도 못 할 것 같다. 예전에는 트렌드라는 게 6개월에 한 번씩 바뀌거나 계절마다 한 번씩 바뀌었다면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아니 2주에 한 번씩 바뀔 정도로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지난주에 “요즘 유행하는 얘기”라고 들었는데 이번 주에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아휴, 요즘 어디 가서 그런 얘기 하면 촌스럽다 그래요!”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그리고 무슨 일만 생기면 유튜브에서 바로 실시간으로 중계를 하기 때문에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는 바로 그 현장 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꼼수도 통하지 않고 너무 멀리 보면 트렌드를 놓치거나 트렌드를 못 따라갈 수도 있기 때문에 “멀리 보라”는 말을 못 하겠다.

그렇다고 “자세히 보라”는 말도 못 할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 분야를 이해하기 위해 밑바닥부터 차근 차근 올라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 분야의 밑바닥이라는 곳이 너무 때가 많이 묻어 있어서 너무 자세히 보다가 자칫 실망할까 봐 “자세히 보라”는 말도 못할 것 같다.

선배로서 후배에게 귀감이 되고 싶은데 인생, 참 어렵다.

[이재국·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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