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코리아 창간 3주년 기념으로 18일 오후 제1회 소셜 코리아 포럼이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려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총론 발제를 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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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된 시장경제, 리버럴한 시민문화, 고도의 정보통신 기술을 가진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독재 체제를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재 체제의 수립, 또는 최소한 독재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폭력적 시도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독재의 수립을 막거나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계엄이 살아나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목도한 2024년 12월, 1987년 이후 폐기된 정치 체제로 여겼던 ‘독재’란 말이 37년 만에 다시 공론장에 등장한다는 건 분명 역사적 퇴행이다. 아무리 그래도 민주화 이전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굴릴 수 없을 것이란 인식과 기대가 너무 낙관적인 태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금,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18일 ‘시대정신과 공론장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열린 제1회 소셜코리아 포럼에서 “그것을 막는 길은, 그런 비극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이 아니라 그것이 오지 않도록 하는 실천”이라고 일갈했다.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이날 포럼(주최 소셜코리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겨레일과사람연구소)에 첫 발표자로 나선 신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가 ‘총체적 위기 상황’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신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비교해 ‘12·3 계엄 사태’는 “윤석열과 군, 경찰, 정부 각료들이 조직적으로 벌인 내란 쿠데타로 민주주의, 헌정, 법치, 자유, 신뢰, 생명과 같은 우리 사회의 근본 전제가 무너져 내린 사건”이라고 짚으면서, “지금 우리 사회의 위기가 매우 깊고 위중하며 결코 광폭한 대통령 한 명이 바뀌어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12·3사태에 앞서 국제적 평가기관들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의 급격한 후퇴를 연이어 보고하면서 보다 심각한 독재화의 가능성을 경고했다며 세계 17~18위를 유지하던 자유민주주의 지수(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47위로 추락하고, 세계 62위로 추락한 언론자유도(국경없는기자회) 등을 제시했다. 이어 “한때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K-민주주의’의 기억에 취해 빠르게 독재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며 “그러한 퇴행의 과정 끝에, 사람들은 결국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명령으로 국군 최정예 부대들이 국회를 점령하고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는 내란의 파국을 맞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민주주의 퇴행의 배경과 원인을 과도하게 중앙집중화된 권력구조,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주의, 비선 권력의 강화, 불평등 문제 해결의 실패 등 4가지 요인이 상호작용하면서 ‘복합 위기’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승자에게 과도한 권력을 주는 구조의 취약성을 지적했다. “대통령으로 선출된 인물이 민주주의와 인권, 합리적 거버넌스를 추구하는 인물이라면 급진적 제도 개선이 가능하지만, 만약 대통령이 민주적 규범과 가치를 무시하는 인물이라면 이런 종류의 권력구조는 아주 위험해진다. 때론 대통령의 힘을 빌려 개혁도 했지만, ‘양날의 칼’의 반대쪽 날이 너무 사납다.”
신 교수는 한국 사회가 우선하여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면서 “장기적으로 정치 영역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분산시키고 권력 남용을 제어하기 위한 제도 개혁을 완성하는 일”이라고 제언했다.
소셜 코리아 창간 3주년 기념으로 18일 오후 제1회 소셜 코리아 포럼이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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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정치 쪽 발제를 맡은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도 민주주의 허약성을 먼저 짚었다. 이 처장은 “계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며든 전근대적 요소들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종적인 헌정적 안전장치(국회의 계엄 해제) 외에 권력구조 자체에서 이러한 통치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와 민주적 정치 관행이 충분히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1987년에 수립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군부독재로의 회귀를 막을 수 있는 만큼은 튼튼하지만, 통치의 내용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없애고 더 좋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기반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상태를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이르는 긴 여정에서 안개가 자욱한 ‘회색 지대’에서 헤매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 처장은 윤석열식 ‘포퓰리즘적 독재’는 ‘정치적 효능감’이 낮아지면 얼마든지 다시 출현할 수 있다고 봤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국민이 2번(박근혜와 윤석열 탄핵)이나 민주주의를 구출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다시 세 번째 반복된다면, 그다음 정치적 효능감의 저하는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를 저하할 가능성이 크다… 회복 탄력성만 믿고 민주주의에서는 어떤 지도자도 탄생할 수 있다는 식의 안일한 태도를 취한다면, 또 더 나은 지도자를 육성하고 선출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자만의 덫’에 빠질 것이다.”
이 처장은 정치가 복원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다시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치의 복원을 어렵게 하는 정치 혐오와 자만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실제 국민의 삶의 질을 더 낫게 만드는 ‘정치적 효능감’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끝으로 이 처장은 “한 번의 계엄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의 계엄은 희극으로 끝났다. 세 번째 계엄은 포퓰리즘적 방식으로 나타나 파시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소셜 코리아 창간 3주년 기념으로 18일 오후 제1회 소셜 코리아 포럼이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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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복지 분야 발표를 맡은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탄핵만으론 또 다른 윤석열을 막을 수 없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 윤석열 정부가 유린했던 민주적 절차와 권리는 복원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선거는 매번 엄청난 기대를 동반했지만 예외 없이 엄청난 실망으로 귀결됐다. 부분적인 제도 변화와 공적 복지의 양적 확대를 제외하면 그 어떤 정권 교체도 사회경제적 위험을 만들어내는 생산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번 탄핵은 정권 교체를 넘어서 생산과 분배(및 재분배) 방식의 개혁을 담은 ’체제 전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윤 교수는 권력구조의 개혁이 필수적이라면서도 “모순적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권력구조는 민주주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분권화되고 견제가 가능한 권력구조인 동시에 한국 사회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효과적으로 개혁해 나갈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갖는 권력 구조여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 분야를 맡은 조명래 단국대 석좌교수는 현재 정치, 사회적 위기만큼이나 기후위기도 심각하다면서 “한국은 ’기후 후진국’인데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는 녹색 전환의 시동이 꺼져 있었다. 기후 위기를 녹색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린뉴딜 재추진과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녹색 전환 중심으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홍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한국의 ’이중 노동시장’ 문제를 지적한 뒤 비슷한 노동에 대한 비슷한 수준의 보상, 노동 기본권의 사각지대 해소, 사회안전망의 꾸준한 확대 등을 노동 분야의 실천안으로 제시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윤석열 정부를 ’우파 포퓰리즘’의 틀로 분석하면서 현 정부가 집착한 ’건전재정과 감세’, ’부산 엑스포와 재벌 총수와의 떡볶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예시했다. 이 교수는 이어 “우파 포퓰리즘은 아직 블랙박스(실체를 알 수 없음)다. 2000년대 이후 서구 중심으로 부흥했고, 재분배라는 좌파 포퓰리즘식의 공통된 의제도 없고, 리더들만 과잉 자신감이 솟구치기 때문”이라며 “정책 결정자들이 사회후생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회제도 설계자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그들의 사익 추구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18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제1회 소셜코리아포럼에서 원탁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류이근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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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영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오늘의 시대 정신은 ’돌봄 사회 구축’이라면서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성하는 데 돌봄은 필수적인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또 “돌봄을 개인이나 가족이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돌봄이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7개 분야 발표 뒤 이어진 원탁 토론에서는 이창곤 중앙대 교수(전 한겨레신문 기자)의 사회로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정문주 한국노총 사무처장,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김용기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회장(아주대 교수), 최영준 연세대 교수,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토론이 이어졌다.
총괄 논평을 맡은 신광영 명예교수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된다면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학자들 사이의 논의에 그칠 게 아니라) 한국의 정책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와 효율적인 정책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주적 정책 형성 시스템 구축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정책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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