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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전두환 고스톱’과 윤석열의 검찰 쿠데타 [정의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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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계엄 선포로 많은 국민이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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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1980년 5월17일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처 뒤 ‘전두환 고스톱’이 유행했다. 기존 고스톱에서는 판쓸이를 하면 피를 한장씩 가져오는데, 전두환 고스톱에서는 피가 아니라 원하는 패를 가져왔다. 5·17 계엄 확대 뒤 자의적인 일괄 검거와 체포를 자행하던 전두환 신군부의 정국 판쓸이를 풍자한 놀이였다.



대통령 윤석열이 12월3일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는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을 보고는 나는 공포감 속에서도 난데없이 전두환 고스톱이 떠올랐다. 전두환과 윤석열의 쿠데타는 비교되는 점이 많다. 전두환은 군부를 바탕으로 쿠데타를 했고, 윤석열은 검찰을 바탕으로 쿠데타를 했다. 장기 쿠데타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전두환은 1979년 12·12 군부 쿠데타를 시작으로 하여, 5·17 비상계엄 확대,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1980년 9월1일 당시 유신헌법에 의한 대통령 취임, 1981년 3월3일 5공화국 헌법에 의한 대통령 재취임까지 무려 1년4개월에 걸친 장기 쿠데타를 주도했다. 세간에서는 역사상 가장 긴 쿠데타라는 평도 나돈다. 윤석열도 2019년 7월 검찰총장에 취임한 지 한달 만에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조국과 그 일가를 상대로 검찰 내 추종세력들을 동원해 수사를 벌이며 긴 쿠데타를 시작했다. 보수 정당의 ‘업둥이’로 선택돼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 뒤 검찰권을 남용하는 지속적인 편의적이고 선택적인 수사로 정적들을 제압하려 하다가, 급기야 12월3일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내세운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불발됐다.



전두환의 쿠데타는 군의 무력을 노골적으로 이용한 쿠데타였던 데 비해 윤석열은 검찰권을 야비하게 악용한 쿠데타였다.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와 편의주의를 정적을 탄압하고 자신의 세력을 비호하는 데 쓰면서 검찰권 독립을 내세웠다. 검찰권 남용도 한계에 이르자, 결국 군 내의 고교 동창인 충암파를 앞세운 비상계엄으로까지 치달았다.



전두환의 쿠데타는 1980년대 전후의 전형적 군부 쿠데타였는데, 윤석열의 쿠데타는 법조 세력을 앞세운 밀레니엄형 쿠데타이다. 윤이 검찰총장에 취임하기 한달 전인 2019년 6월17일 이집트에서 최초의 민선 대통령이었던 무함마드 무르시가 재판정에서 방음유리 우리에 갇혀서 재판받다가 사망했다. 무르시는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정권이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타도된 뒤 2012년 이집트에서 사실상 최초로 실시된 자유로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으나, 법원과 검찰의 협공에 시달리다가 국정운영이 마비된 뒤 2013년 7월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다.



무르시를 실각시킨 군부 쿠데타까지 법원은 무르시의 자유정의당을 의회 다수로 만들었던 의회 선거를 무효화하고, 검찰은 무바라크 퇴진을 주도한 시민 세력들을 기소하고, 민주화 시위대를 죽인 폭도들을 법원과 합작해 무죄 석방했다. 기존 총선도, 신헌법도, 새로운 총선도 모두 무효화되거나 가로막혀 무르시의 국정이 마비되자, 군부 쿠데타가 감행돼 성공했다. 법조 세력들은 무르시의 이슬람주의에 맞서 세속주의 법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쿠데타 이후 무바라크에게 무죄를 선사하고, 쿠데타를 반대하던 시위대에 종신형을 내렸다.



브라질의 법조 쿠데타가 윤의 검찰 쿠데타에 더 시사점을 준다. 브라질에서는 2015년 ‘세차작전’이라는 정치 비자금 수사가 진보적인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의 탄핵,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의 실형, 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출현과 몰락, 수감됐던 룰라의 재기와 재집권으로 이어지는 전무후무한 정치적 격변을 자아냈다. 세차작전은 시간이 갈수록 진보적 성향의 집권 여당으로만 향하고, 부패가 훨씬 심한 기존 야당의 보수 정치인들은 모른 척하는 ‘선택적 공정 수사’로 편향됐다. 세차작전 때 판사와 검사들이 증거 등을 놓고 재판 결과를 모의한 통화 내역이 나중에 폭로되기도 했다. 윤석열 검찰이 조국 일가 수사부터 보여준 행태와 판박이였다.



윤은 비상계엄이 실패하자, 7일 담화에서 “저의 임기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당’은 숨어 있던 쿠데타 세력이 모인 당이 분명하다. 윤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하고, 국민의힘은 탄핵을 반대하고, 태극기 부대들은 비상계엄이 정당하다고 연일 소란을 피운다. 윤의 쿠데타는 ‘우리 당’과 함께 아직 진행형이다. 윤과 ‘우리 당’이 만들 ‘윤석열 고스톱’은 낙장을 할 때마다 선택적으로 마음대로 패를 가져오며 공정하다고 외치는 고스톱일 것이다.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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