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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올해 미국 FDA 희귀의약품 지정(ODD) 품목 리스트에 기재된 국내 제약바이오 의약품은 21개다. 작년 FDA ODD 국내 제약품 16개 보다 5개가 늘었다. 17일 기준 FDA ODD 463개 중 미국 290개, 중국 66개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FDA ODD는 미국에서 통상 환자 수가 10만 명 이하인 질병에 대한 치료제에 대해 신속심사, 감세, 7년간 시장독점권 지위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FDA ODD는 바이오벤처 기업 타겟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술력을 보유한 전통 제약사들이 블루오션 개척용으로 뛰어드는 추세다. 성과도 잇따른다.
보령 임상 2상 IND 신청 앞둬
올해 가장 먼저 FDA ODD에 성공한 제약사와 물질은 보령의 혈액암 신약후보물질 'BR-101801'이다. BR-101801은 말초 T세포 림프종(PTCL) 등 다양한 적응증을 목표로 개발 중인 계열 내 최초(First-In-Class) 항암제다. 이 약물은 암세포의 주요 성장 조절 인자인 PI3K 감마(γ), PI3K 델타(δ), DNA-PK를 동시에 저해하는 삼중 저해제로 설계됐다.
BR-101801은 지난 2021년 진행된 임상 1a상에서 PTCL 환자 9명 중 1명에게서 완전관해(CR), 2명에게서 부분관해(PR)를 확인하며 초기 효능을 입증했고, 지난해 말 임상 1b상에서도 완전관해 2명, 부분관해 1명이 추가로 확인돼 총 19명의 유효 평가 환자 중 6명에게서 효능이 나타났다. 특히 질병 무진행 생존 기간 중앙값(mPFS)이 5.6개월로 기존 치료제(4개월 미만)보다 길게 나타났으며, 약물 투여 환자들에게서 혈액 독성 발생률이 낮고 약물에 의한 사망이 없었음을 확인해 안전성도 입증했다.
BR-101801은 지난 2022년 림프종 치료 적응증으로 FDA ODD를 획득한 데 이어 지난해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도 같은 적응증으로 개발단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올해 추가 지정은 혈관면역아세포림프종 질환 영역에서 획득한 것이다.
보령은 내년 상반기 내 BR101801의 국내 임상 2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국내 식약처에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기에 임상 2상 완료 후 조건부 허가를 통해 품목허가를 받을 수 있다. 상반기 ODD 획득 후보물질 중 조기 출시에 가장 가깝다.
같은 달 알지노믹스가 간세포암(HCC)과 교모세포종(GBM) 치료를 목표로 개발 중인 유전자 치료제 후보물질 'RZ-001'이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네오이뮨텍의 'NT-I7'도 1월 췌장암 영역에서 희귀의약품에 추가 지정됐다.
RZ-001은 아데노바이러스 벡터를 통해 리보핵산 치환효소(RNA trans-splicing ribozyme)를 전달해 암세포에서 과발현되는 텔로머라아제(hTERT) RNA를 표적한다. 이를 통해 암세포의 무한 증식을 억제하고, 동시에 항암 유전자를 발현시켜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이중 기전을 갖추고 있다.
HCC 영역에서는 올해 8월 FDA에 면역항암제와 병용하는 임상 1b/2a상 계획을 승인받아 간세포암 환자 약 50명을 대상으로 1차 표준치료제(티쎈트릭+아바스틴)와 함께 RZ-001을 병용 투여해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할 예정이다. GBM 영역에서는 지난 10월 FDA에 동정적 사용(EAP, Expanded Access Program) 승인을 받은 데 이어 지난달 뇌암(Glioblastoma)에 대해 패스트트랙(Fast track) 지정을 받는 등 순항하고 있다.
EAP란 허가 이전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신약을 환자에게 인도주의 차원에서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주로 생명이 위협적인 질병이나 치료 옵션이 부족한 질환에 적용되는데, 긴급한 치료 옵션을 제공하는 동시에 의약품의 임상적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패스트트랙(Fast Track) 제도는 FDA에서 제공하는 제도 중 하나로, 중대한 질병에 대한 혁신적인 치료법에 대해 승인 절차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비임상 자료에서 해당 신약의 기전이 혁신 신약(first in class) 수준으로 인정받아야 지정될 수 있다. 희귀의약품 지정이 지난 10년간 매년 300개에서 470개 사이로 지정된 것에 비해 패스트트랙 지정은 매년 30~90개에 불과해 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는다.
5월에는 한미약품·GC녹십자가 공동개발 중인 파브리병 신약 'LA-GLA'도 FDA ODD를 획득했다. LA-GLA는 장기지속형 효소 대체요법 (Long-Acting Enzyme Replacement Therapy, LA-ERT) 기반의 혁신 의약품 후보물질이다. 파브리병 환자에게 필수적인 알파-갈락토시다제 A(α-Gal A)라는 효소를 대체하는 물질로, 기존의 효소 대체 요법(ERT)보다 장기간 효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LA-GLA가 개발에 성공하면 세계 최초 월 1회 피하투여 용법 파브리병 신약이 된다. 기존 1세대 파브리병 치료제는 2주에 한 번 병원에 방문해 오랜 시간 정맥주사를 맞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정맥 주입에 따른 치료 부담, 진행성 신장질환 억제에 대한 효능 부족 등의 한계점이 있다.
LA-GLA는 지난 9월 글로벌 임상 1/2상 시험계획서(IND)를 승인받아 임상을 진행 중이다.
이외에 스파크바이오, 에스엔바이오, 오스코텍, 인게니움테라퓨틱스, 닥터노아바이오텍, 지아이이노베이션, 제닉스큐어 등이 ODD를 획득했다.
레졸루트 임상 3상 진행
하반기 추가로 10개 후보물질이 FDA ODD가 됐지만 대부분 비임상 단계로 임상 1상 이하에 머물러 있다. 현재 가장 앞서 나간 물질로 평가 받고 있는 것은 한독 관계사 레졸루트의 'RZ-358'다.
RZ-358은 자가면역 질환과 관련 질환의 치료를 목표로 개발 중인 항체 치료제다. TGF-β1과 TGF-β2라는 특정 분자를 차단해 과도한 섬유화나 염증을 억제하는 기전을 갖고 있다. 선천성 고인슐린증(HI)으로 인한 저혈당증 치료제를 적응증으로 한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FDA가 글로벌 임상 3상 연구에 미국을 포함하는 것을 승인하며 내년 초 환자 등록을 시작할 예정이다. 탑라인(topline) 결과는 내년 하반기 확인할 전망이다.
레졸루트는 희귀, 대사 질환에 대한 표적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바이오벤처로 한독이 13%의 지분을 갖고 있는 관계사다. RZ358 외에도 경구용 당뇨병성 황반부종 치료제 RZ402 등을 개발하고 있다. 한독은 RZ358과 RZ402의 국내 상업화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하반기 ODD 기업 중 후기 단계 임상을 진행 중인 기업은 레졸루트를 제외하면 하이센스바이오가 유일하다. 비상장 기업인 하이센스바이오는 이번 달 법랑질형성부전증 치료제 'HBO-001'에 대해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법랑질형성부전증은 유전적 요인으로 인해 치아의 법랑질 형성에 문제가 생기는 희귀질환이다. 미국에는 3만여명, 국내는 1만명 미만의 환자가 존재한다. 치아의 시린 증상과 마모, 파손 등을 수반하며 현재까지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 알려져 있지 않다.
HBO-001은 상아질 재생 기술 기반 치료제인 치아 지각과민증 (시린이) 전문의약품의 국내 임상 2상을 마친 상태다. 미국에서는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희귀질환 시장, 300조원 이상 성장 전망
희귀질환 치료제는 기존 치료제가 없거나 부족한 상태에서 치료제를 개발할 경우, 시장에서 큰 경제적 잠재력을 가질 수 있다. 보통 긴 개발 기간이 필요하지만, 개발 완료 후에는 해당 질환 환자에게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기존에는 긴 개발 시간과 불확실한 미충족 수요 탓에 개발을 꺼리는 기업이 많았으나, 여러 나라에서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시장이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은 연구개발(R&D)에 들어간 비용의 50%에 대해 세금 감면 혜택과 임상 개발 보조금 등을 제공하고 있다. 또 미국은 허가 심사 비용 면제, 시판 허가 후 7년간 미국 내 시장독점권 등을 제공한다. 유럽연합에서는 10년간 시장 독점권과 함께 법적 요건 완화 및 마케팅 승인 절차의 우선 처리 등의 혜택을 준다.
국내에서도 세금 감면, 허가 신청 비용 면제, 우선심사제도 적용, 시판 후 독점발매 기간 10년 부여 등 글로벌 기준과 비슷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한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이전에 희귀의약품은 낮은 수요에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아 개발에 나서는 기업이 적었다"며 "최근 각국 정부가 여러 혜택을 제공하며 시장이 커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희귀의약품 시장 규모가 300조원 넘게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올해 국내 기업이 집중적으로 ODD 획득에 성공한 바이오 분야가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효인 국가신약개발사업단 기획팀 연구원은 "각국의 공중보건 정책 및 시장 독점권 제공 등 여러 인센티브 제도에 힘입어 희귀의약품 시장은 2020년 이후 본격적으로 제약사들이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확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니치마켓으로 부상했다"면서 "전 세계 희귀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으로 1850억달러(약 265조84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2028년에는 약 2700억달러(약 387조93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글로벌 희귀의약품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0.8% 증가한 2068억2000만달러(약 297조1589억원)를 기록했고, 향후 5년간 연평균 10.8% 증가세로 2028년에는 3458억8000만달러(약 496조9603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제품유형별 매출을 살펴보면 바이오의약품은 지난해 858억8000만달러(약 123조3923억원)에서 2028년 1921억1000만달러(약 276조236억원)로 매년 17.5% 이상 성장할 전망으로, 향후 바이오의약품 매출 비중도 계속 높아질 것으로(2023년 41.5% -> 2028년 55.5%) 보인다. 2026년에 처음으로 케미컬의약품의 비중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한다"고 했다.
이병현 기자 bott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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